朝日報 萬物相

한강 철책선

yellowday 2012. 4. 10. 21:55

입력 : 2012.04.09 22:27

미국 일리노이에 사는 목동 조지프 글리든은 양들이 울타리를 뛰어넘으며 가시장미 덩굴을 피해 다니는 것을 유심히 봤다. 조지프는 커피 분쇄기로 철사를 꼬아 가시를 만들고 철사줄 두 가닥 사이에 끼워넣었다. 그가 만든 가시 철조망은 수많은 목장의 울타리가 됐다. 백인 거주지와 인디언 구역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기도 했다. 경작 지주와 목축업자 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는 목축업자들이 철조망을 자르고 가축을 경작지 쪽으로 풀어놓아 '철조망 절단 전쟁'이 벌어졌다.

조지프는 1874년 철조망 특허를 내 큰돈을 손에 쥐었다. 호주의 앨런 크렐 교수는 책 '철조망의 문화사'에서 철조망을 '악마의 끈'이라고 불렀다. 철조망 바깥으로 내몰린 인디언의 눈에 철조망은 악마였다는 것이다. 1차대전 때 철조망은 참호전을 치르는 수비군에게 중요한 방어선이었다. 공격군을 양떼 몰듯 '죽음의 구역' 안으로 몰아넣는 유도 장애물로도 쓰였다. 6·25 때 널리 쓰인 철조망은 전쟁이 끝나자 휴전선 155마일을 남북으로 찢어놓은 장벽이 됐다.

간첩 침투를 막으려고 설치한 한강 하구 철책선 중에 고양 쪽 12.9㎞와 김포 쪽 9.7㎞ 철책이 어제부터 철거되기 시작했다. 서울시 시계(市界)에서 일산대교 있는 곳까지다. 더 하류 쪽은 대간첩작전에 필요해 당분간 놔두기로 했다. 한강 철책은 40여년 전 세웠다가 90년대 들어 남북 대치가 완화될 때마다 철거 압박을 받아왔다. 자연경관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김포시와 고양시가 2001년부터 철거를 요청했고 몇 해 전 군과 합의가 이뤄졌다.

한강 하구는 낙조가 장관이다. 해질 무렵 자유로를 타고 서울에서 파주 쪽으로 차를 달려본 사람은 안다. 양팔을 벌려도 다 못 품을 만큼 너른 서녘 하늘과 하구가 온통 붉게 물들면, 우리는 비로소 '물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불교에 서방정토가 있다던데 석가모니가 가끔 그 극락의 들머리를 보여주는 것인가 싶다. 그러다 문득 하늘과 땅을 갈라놓는 흉측한 철조망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분단 현실을 일깨우며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대책 없이 철조망만 걷어내면 자유로로 뛰어드는 고라니가 자동차에 치여 로드킬을 당한다는 걱정도 있다. 강가 쪽 버드나무 군락과 장항 습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그래서 고양시는 이중철책 구간에서 일부 안쪽 철책을 그대로 둘 생각이다. 일산대교 북단 이산포구처럼 조선시대에 쟁쟁하던 한강 하구 포구들이 다시 기지개를 켤지 설렌다. 다만 북한이 미사일을 쏘겠다고 벼르는 마당이어서 마음이 개운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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