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더디 피는 봄꽃

yellowday 2012. 4. 9. 18:17

입력 : 2012.04.06 23:04

4월 초가 되면 거제도 대금산 꼭대기에 온통 꽃불이 난다. 10만㎡, 3만평 진달래밭이 분홍 융단으로 깔린다. 거대한 분홍 강물로 흘러내린다. 저 아래 거제 동쪽 바다엔 거가대교가 부산으로 내달린다. 4월 초 섬진강변 하동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십리 길은 화사한 벚꽃으로 뒤덮인다. 순천 선암사 무우전 돌담길에선 600살 백매·홍매가 꿈결처럼 그윽한 향기를 뿌린다. 경남 남해 서쪽 해안도로에선 길가에 동백꽃·개나리·유채꽃·벚꽃이 함께 피는 진풍경을 만난다.

▶올봄에도 4월 첫 주말인 7일 남녘 여기저기서 꽃 축제가 열린다. 대금산 진달래, 여수 영취산 진달래, 화개장터 벚꽃, 선암사 홍매화…. 작년보다 며칠씩 늦게 잡았지만 축제 준비하는 사람들은 괴롭다. 대금산 진달래는 이제 겨우 20%만 피었다. 열흘 뒤에나 꽃이 절정에 이를 것 같단다. 선암사 매화는 망울만 맺은 채 다음 주말이 돼야 만개할 모양이다. 화개장터 벚꽃도 '개화'를 못했다. 나무 한 그루가 꽃 세 송이도 못 피웠다는 얘기다. 하동군은 축제를 취소하고 7~8일 '작은 음악회'만 열기로 했다.

▶지난달 광양 매화와 구례 산수유도 꽃 없는 축제를 했다. 진해 군항제는 사흘째인 3일에야 벚꽃이 피기 시작해 10일 폐막 무렵에나 볼 만할 것 같다. 올 봄꽃이 유달리 더디 피는 건 무엇보다 늦추위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엔 19년 만에 '4월 눈'이 내렸다. 3월에도 평년보다 추운 날이 19일이었다. 꽃들은 봄이 돼 기온이 올라가고 낮이 길어지는 것을 인식해 꽃 피는 시기를 조절한다. 그 '개화 시계'가 추위에 헷갈린 셈이다.

▶올해 꽃샘추위가 유별난 이유는 북극 지대 기압이 바뀌는 '북극 진동'에 있다고 한다. 북극에서 남쪽으로 몰아치는 바람은 지구 자전 때문에 둥그런 편서풍 고리를 만들며 돈다. 이 제트기류는 찬 북극 공기가 더 못 내려오게 막다 온난화로 북극 기단이 더워지면 느슨해지면서 출렁댄다. 올봄 그 진동이 강해 찬 공기가 한반도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꽃들이 저마다 피는 때가 다른 것도 번식을 잘하려는 노력이다. 식물은 동물처럼 좋은 환경을 찾아 옮겨다닐 수 없다. 대신 꽃 피는 날짜를 옮겨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개나리만 해도 꽃가루가 적고 꿀도 별로 없지만 일찍 꽃을 피워 꽃가루 퍼뜨려줄 곤충을 독차지한다. 이런 개화 질서가 무너지면 꽃과 벌 나비가 제때 만나지 못해 생태계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늦추위가 부리는 강짜에 봄이 더욱 인색해졌다. 소동파가 '봄밤 한 시각은 천금 값(春宵一刻値千金)'이라고 했듯 짧은 봄날을 소중히 여기고 고맙게 누릴 일이다.

'朝日報 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 철책선  (0) 2012.04.10
어이없는 지하철 방송  (0) 2012.04.09
개성 부자의 山林 기부  (0) 2012.04.06
주말 텃밭  (0) 2012.04.05
이혼 산업 12'4/3  (0) 2012.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