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이혼 산업 12'4/3

yellowday 2012. 4. 4. 01:03

도쿄에 사는 회사원 고무라는 1995년 고베 대지진이 터진 뒤 느닷없이 아내에게 이혼당한다. 아내는 닷새 동안 지진 뉴스만 지켜보다 말없이 집을 나가 편지를 보낸다. "공기 덩어리와 사는 것 같으니 이혼하자"는 편지다. 고무라는 "내게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군"이라며 순순히 이혼에 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쿠시로에 내린 UFO' 이야기다. 대지진으로 바뀐 인생관을 젊은 커플의 이혼에 담은 작품이다.

▶12년 전 나온 하루키 소설은 요즘 일본 사회의 새로운 이혼 풍속도를 일찍 내다본 셈이 됐다. 작년 3월 대지진을 겪은 뒤 일본에선 이혼이 세 배가량 늘어났다. '대지진을 계기로 삶을 되돌아보고 새 출발 하려는 부부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이혼하는 부부가 친지들을 초대해 이혼 선언을 한 뒤 둘이 함께 망치로 결혼반지를 부수는 '이혼식'도 인기다. 떳떳하게 헤어져 꿋꿋하게 잘 살자는 20~30대의 이혼 방식이다. 이혼식 전용 식장을 빌리는 데 뷔페 포함해 5만5000엔쯤 든다고 한다.

미국에선 '이혼 산업' 규모가 1000억달러에 이른다. 첫 결혼의 41%, 두 번째 결혼의 60%가 이혼으로 끝나는 나라다. 얼마 전 뉴욕 맨해튼에선 첫 '이혼 엑스포'가 열렸다. 이혼 전문 변호사를 비롯해 재무설계사, 심리치료사, 결혼정보회사들이 전시장을 꾸몄다. 이혼 뒤 새 삶을 도와주는 미용-패션 전문가와 인테리어 업자, 재혼 배우자 뒷조사를 해주는 사설탐정도 참가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33만쌍이 결혼하는 사이 11만4000쌍이 이혼했다. 작년 서울 시민 이혼 조사에선 결혼 20년 이상 '황혼 이혼'이 27%를 차지해 결혼 4년 미만 '신혼 이혼' 25%를 처음 앞질렀다. 그렇다 보니 변호사 업무 중에 이혼 소송 비중이 커졌고, 한 해 평균 38차례나 이혼 소송을 다루는 변호사도 있다. 이혼 전문 월간지가 생겼는가 하면 결혼정보회사에선 재혼 상담 비율이 늘고 있다. 한 해 결혼 중에 22%, 7만여건이 재혼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세 차례 이혼해 성씨가 다른 아이 셋을 키운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위씨, 오씨, 이씨여서 셋 다 성씨에 '이응'이 있네"라고 당당하게 말해왔다. 이혼을 숨겨야 할 일로 여기던 과거와는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 이혼의 아픔을 딛고 더 성숙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커플도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뉴욕의 이혼 박람회를 두고 "이혼을 법률 절차가 아닌 산업으로 다루자는 풍속 변화는 불행한 일"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가슴 아픈 파경(破鏡)도 돈벌이가 되는 '틈새시장'으로 각광받는 세상이다. 마치 깨진 거울처럼 볼썽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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