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서로에게 말했지요. 다음 생(生)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2006년 여든세 살 프랑스 정치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아내 도린에게 긴 편지를 썼다. 그는 아내가 20여년 전 불치병으로 심한 고통을 겪자 모든 활동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 아내를 보살폈다. 부부는 이듬해 함께 목숨을 끊어 쉰여덟 해 결혼을 편지 글 그대로 마감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1990년대 초 일본에서 아흔 살 남편과 치매를 앓던 아내가 여행 끝에 실종됐다. NHK가 노부부의 아들과 함께 몇 달 동안 두 사람 행적을 쫓아 다큐로 만들었다. 신용카드 기록을 추적해보니 여행길은 부부의 옛 신혼여행지에서 시작했다. 부부가 즐겨 올랐던 산을 거쳐, 자주 갔던 온천에서 끝났다. 그곳 바닷가에서 부부의 옷이 발견됐다. 남편의 외투 주머니엔 동전 몇 십엔만 남아 있었다. 부부가 은행 잔고를 다 쓴 뒤 함께 바다로 들어간 마지막 '추억여행'이었다.
▶1912년 타이태닉호가 침몰할 때 뉴욕 메이시백화점 주인 스트라우스의 아내는 여자들에게 우선 내준 구명정에 오르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40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 와 떨어져 살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구명정이 부족해 타지 못한 남편과 함께 가라앉는 배에 남았다. 그리스신화에서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는 한날한시 죽게 해 달라고 제우스에게 빌어 소원을 이룬다. 동양에선 "함께 늙고, 죽어 한 무덤에 묻히자"는 사랑의 맹세를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고 했다.
- 스트라우스(왼쪽)와 그의 아내. /출처=nypost.com
▶부부의 이상(理想)은 같은 날 죽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 죽음까지 공유할 만큼 완전한 사랑이 있을까. 미국 워싱턴공항공단 찰스 스넬링 회장이 6년 동안 치매를 앓아 온 아내의 손과 발로 살다 함께 떠났다는 소식이 어제 신문에 실렸다. 그는 "아내를 수발하는 것은 60년 동안 받은 뒷바라지의 빚을 갚는 일"이라고 했었다.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엔 "우리는 행복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뒤까지 살지는 않기로 했다"고 썼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내력도 성격도 다른 남녀가 고락(苦樂)을 함께하며 아주 조금씩 닮아간다.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말투, 얼굴까지 비슷해진다. 서로의 결함과 상처까지도 받아들이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교감이 쌓인다. 결혼은 일생을 함께 거는 일이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상, 서로를 참아내지 못하는 세상에서 현대판 필레몬과 바우키스들은 가슴 저릿한 정화(淨化)요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