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21 22:33
오스트리아 생태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키우던 회색기러기의 알을 깨고 새끼가 나왔다. 새끼는 고개를 갸웃하며 로렌츠를 살피더니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사람을 제 어미라고 머릿속에 새겨버리는 '각인(刻印) 효과'다. 로렌츠는 기러기가 밤에 자다 수시로 깨 '엄마'를 찾으며 울 때마다 달래야 했다. '결정적 시기'에 새겨진 기억이 평생을 가는 현상은 동물생태학뿐 아니라 교육심리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다룬다.
▶일생에서 부모와 가족 다음으로 깊이 각인되는 사람이 초등학교 선생님일 것이다. 집을 나와 학교라는 새 세상으로 나서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50년 전 시골 초등학교에 들어간 코흘리개를 맞아준 첫 담임은 아담한 몸집에 이쁘고 상냥한 여선생님이었다. 한동안 선생님은 화장실에도 안 가시는 것으로 알았었다. 선생님 모습과 성함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어미 닭만 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처럼 솜털 보송보송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고향 임실의 초등학교에서 38년 교편을 잡았던 시인 김용택은 젊은 어느 날 아이들이 황홀하도록 아름답게 보이더라고 했다. 그때 그는 결심했다. 내 머리 허옇게 될 때까지 이 아이들 앞에 서 있으리라. 선생 이상 되려고 하지 말 것이며, 돈을 더 벌려고도 하지 말 것이며, 선생 월급으로 행복할 것이며, 선생으로 삶의 자존을 지킬 것이라고.
▶시인 나태주도 충남의 시골 초등학교를 돌며 43년 세월을 아이들과 함께했다. 아내에게 월급봉투를 건네면 제일 먼저 쌀과 땔감을 사둘 정도로 가난했다. 그러나 한때 얻은 장학사 자리도 내던지고 계룡산 마티재 산골의 상서초등학교 교장을 자청했다. 나태주 교장선생님은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줄넘기를 했다. 문예반과 합창반을 맡아 오르간을 치며 아이들과 노래를 불렀다. 그는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은퇴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759개 직업을 조사했더니 초등학교 교장이 자기 일에 가장 만족하고 있더라고 한다. 돈보다 삶의 여유를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따랐지만 무슨 분석이 필요할까. 김용택은 아이들과 사는 것이 꼭 연애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주춤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그의 엉덩이를 툭 건드렸다. 그가 웃으면 아이는 그의 손을 잡았고, 등에 기어올라 업혔다. 갓 입학한 산골 아이들은 나태주 교감을 "고감선생님", 나태주 교장을 "고장선생님"이라 불렀다.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매달렸다. 그보다 행복한 삶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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