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봉하대군

yellowday 2012. 3. 26. 22:57

입력 : 2012.03.23 23:22

2009년 10월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정.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청탁을 넣은 대가로 29억여원을 받았다가 기소돼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조병현 부장판사는 선고에 앞서 10분간 훈계를 했다. "이제는 해가 떨어지면 동네 어귀에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는 초라한 시골 늙은이로 전락한 노건평씨에게…" "노씨는 돈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거둬 공직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봉하대군'의 역할을 즐겨왔다."

▶'대군(大君)'은 조선시대 임금의 정궁(正宮) 몸에서 태어난 아들을 뜻했다. 자연히 왕의 형·동생을 부르는 말도 됐다. 동생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듬해부터 사람들은 노건평씨를 고향마을 이름을 붙여 '봉하대군'이라 불렀다. 그때부터 노씨의 이름은 국세청 인사 개입,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의 연임 청탁, 박연차 게이트에 오르내렸다. 그는 온갖 인사청탁·이권개입·선거공천에까지 1인 로비창구 역할을 했다. 겉으론 그저 시골 노인인 양 행세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무소불위 해결사 비슷했다.

▶현명한 조선시대 대군들은 궁궐로부터 멀리 떠나 비켜서 주곤 했다. 효령대군은 동생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자 스님이 돼 세상을 등졌다. 그는 번뇌를 씻기 위해 북가죽이 늘어나도록 북을 쳤다. "효령대군 북가죽 같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겼다. 큰형 양녕대군도 한양을 떠나 살았다. 신하들은 양녕에게 조금만 허물이 있어도 격렬하게 탄핵했다. 양녕이 예순여덟에 삶을 마쳤을 때 사관(史官)은 이렇게 적었다. '세종의 우애가 지극했고, 그 또한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아 시종(始終)을 보전할 수 있었다.'

▶21세기 봉하대군은 잊을 만하면 수면 위로 떠올라 또 한 번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이번에는 2007년 통영 공유수면 매립사업에 참여한 업체의 청탁을 해결해주고 차명으로 30% 지분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분을 매각한 현금 중 일부가 봉하마을 대통령 사저 건축 비용으로 쓰였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받고 있다. 미국에서도 닉슨의 동생이 재벌 돈을 빌려 식당사업을 하다 발각된 일이 있다. 부시의 동생이 저축조합 부실 책임자로 지목된 적도 있지만 봉하대군처럼 사사건건 끼어들지는 않았다.

▶노건평씨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민주통합당은 "선거에 개입하려는 검찰을 규탄한다"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검찰은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 대통령의 형이나 동생들은 부끄러운 대군 노릇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기는커녕, 북가죽이 늘어지도록 북을 치는 고뇌도 없으니 이제는 그들 얼굴 보기가 괴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