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말 미국 컬럼비아대에서는 평생을 일본 연구에 바친 노(老)학자의 마지막 강의가 있었다. 일본 문학·역사에 관한 저서를 서른 권 넘게 써 외국인으론 처음 일본 문화훈장을 받은 아흔 살 도널드 킨 교수가 강단에 섰다. 온 일본 국민이 3·11 동일본 대지진의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킨은 "지금이야말로 일본에 대한 내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줄 때"라며 "일본에 귀화해 영주(永住)하겠다"고 밝혔다.
▶킨은 열여덟 살 때 뉴욕 헌책방에서 일본 고대소설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영역본을 산 게 인연이 돼 일본 문학에 빨려들어갔다. 그는 "나는 일본과 결혼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일본 연구에 생을 걸었다. 그런 자신을 일본인들이 외국인 취급하는 게 킨의 불만이었다. 그는 "언제쯤이면 내가 하는 일을 일본 문학 '소개'가 아니라 '연구'라고 말해줄 거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2차대전 후 패전국 일본의 문화가 미국·유럽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데엔 킨과 함께 중국 문화권 속에서 일본 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한 라이샤워, 소설 '설국(雪國)'을 영어로 옮겨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사이덴스티커 같은 킨의 선배들 역할이 컸다.
▶프랑스 학자 롤랑 바르트가 쓴 '기호의 제국'은 "도쿄는 중심부가 텅 비어 있는 도시"라는 말로 시작한다. 바르트는 도쿄 한가운데 있는 일왕의 왕궁을 '신성한 무(無·rien)'라고 했다. 이 책은 서양인이 쓴 가장 짧으면서 가장 탁월한 일본 문화 해설서로 불린다.
▶30여년 퇴계·율곡·다산을 연구해 유럽에 알리는 데 몸바친 프랑스인 필립 티에보 세종대 교수가 지난 주말 별세했다. 구한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연구한 외국인은 많지만 한국의 정신문화는 서구인에게 여전히 낯설다. 한국 문화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세계로 건너가려면 '한국문화에 반한 외국인 연구자'라는 징검다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 싹을 찾아 키워가는 것이 우리가 맡아야 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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