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연주회 '휴대폰 폭탄'

yellowday 2012. 1. 16. 19:59

2001년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는 스코틀랜드 국제예술제의 실황 녹음을 폐기해달라고 음반사에 요구했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그는 "연주가 엉망이었다. CD 음반에 담긴다면 평생 수치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고, 몇 분 뒤 또 울리자 그는 그대로 일어나 무대 뒤로 나가버렸다. 돌아온 쉬프가 겨우 연주를 마치기는 했으나 이튿날 신문들은 '영국인의 수치'라고 썼다.

▶지난주 뉴욕 링컨센터에서 뉴욕필이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다가 휴대전화 벨소리에 공연이 끊기는 일이 벌어졌다. 말러의 아홉 번째 교향곡 '대지의 노래'가 섬세한 선율로 울려 퍼지는 대목에서 맨 앞줄에 앉은 노신사의 휴대전화가 3분 넘게 울렸다. 지휘자 앨런 길버트는 처음엔 객석을 노려보며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아이폰 착신음이 계속되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나중에 가까스로 연주를 끝낸 길버트는 "마치 잠을 자다가 난폭하게 일으켜 세워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클래식 연주회 사고가 드문 일은 아니다. 폰 카라얀이 베를린필을 이끌고 미국 순회공연에 나섰을 때는 유대인들이 "히틀러 협력자 물러가라"며 연주홀 안으로 비둘기를 날렸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작년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며 퇴장한 일도 있다. 휴대폰 때문에 교향악이나 독주회를 망칠 때는 '휴대폰 폭탄'이 터졌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회가 깍듯이 청중 예절을 따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그 전엔 관객들이 제멋대로 드나들었고 다소 소란했다. "제발 개는 데리고 오지 말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귀족만 즐기던 연주회에 일반 시민도 자리를 차지하자 오히려 예절이 강조됐다. 최근엔 아방가르드 음악가나 록 밴드가 휴대폰만으로 연주를 하고, 교향악단도 '휴대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소협주곡'을 무대에 올린다.

▶그러나 야구장에는 야구장 문화가 있듯, 현대 클래식 연주장에는 클래식 윤리가 있다. 일본 산토리홀은 10여년 전 전파차단기를 설치했고, 뉴욕은 벌금 50달러를 물린다. 우리는 전파법·전기통신사업법 때문에 전파차단기를 못 쓰기에 안내 방송도 더 자주 하고 표지판도 세워놓지만, '휴대폰 폭탄'은 아무 때나 진동 소음을 내고 화면에서 빛을 뿜는다. 휴대전화를 꺼달라는 안내 방송조차 듣기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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