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던 프랑스군이 폭탄 테러를 당해 58명이 숨졌다. 미테랑 대통령은 최측근인 아탈리 특보에게 봉인된 서류를 맡기며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 적힌 대로 하라"고 했다. 그날 저녁 미테랑은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은 베이루트 테러 현장을 깜짝 방문했다. 미테랑은 숨진 장병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현장 수습을 지휘한 뒤 파리로 돌아왔다.
▶2009년 10월 29일 새벽 4시 미국 도버 공군기지에 오바마 대통령이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진 병사 15명과 마약단속요원 3명의 유해를 맞기 위해서였다. 그는 운구식 내내 거수 경례를 했다. 지난 8월 다시 도버 기지를 찾았을 땐 수송기에 올라가 경례했다. 전사자 30명의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각자 관을 맞추지 못하고 대형 컨테이너에 실어 왔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지난 10월 잉글랜드의 시골 마을 우튼바셋에 왕실을 뜻하는 '로열(Royal)' 칭호를 내렸다. 마을 주민들이 해외에서 전사한 장병의 유해가 근처 공군기지를 통해 돌아와 운구행렬이 마을 앞을 지날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묵념한 뒤 꽃을 바쳐왔다. 앤 공주는 캐머런 총리와 함께 마을 사람들을 찾아와 "여왕과 국가를 대신해 감사한다"는 뜻을 전했다.
▶엊그제 대전 현충원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숨진 전사자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행사 시작 10분 만에 비가 내렸다. 김황식 총리는 경호팀장이 우산을 받쳐주려 하자 "됐다, 치우라"고 했다. 총리는 추모식 40분 내내 장대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전사자의 전우들이 추모시를 낭독할 땐 눈시울을 붉혔고 어깨를 들썩였다. 총리는 옷이 흥건히 젖은 채 희생 장병의 묘역을 찾아 비석을 어루만졌다.
▶2002년 서해교전으로 해군 6명이 전사한 뒤 4년 동안 추모식에 총리가 참석한 적이 없었다. 2006년 한명숙 총리가 유가족을 공관으로 초청했지만 유족들은 정부의 무관심에 항의해 한 명도 가지 않았다. "이래서야 누가 나라에 목숨을 바치겠느냐"는 소리가 컸고, 추모식은 2008년에야 정부 행사로 격상됐다. 추모식은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추모식 분위기에서 배어나오는 진심이다. 김황식 총리가 우산을 받지 않고 장대비를 맞는 모습 자체가 그 어떤 추모사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젊은 병사들의 희생을 감싸안았다. 침묵의 언어란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