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의종(재위 1146 ~70)은 역대 제왕 중에서 호사취미가 가장 강했다. 그 때문에 결국 무신의 난을 맞아 거제도로 귀양 간 뒤 경주에서 살해되는 비극적인 생을 마쳤다. 그의 호사취미는 청자기와에서 극에 달했다. 〈고려사〉 의종 11년(1157) 4월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
"대궐 동쪽에 이궁(離宮)을 완성하였다. 또 민가 50여 채를 허물어 태평정(太平亭)을 짓고 태자에게 명하여 현판을 쓰게 했다. 정자 남쪽엔 연못을 파고 관란정(觀瀾亭)을 구축했으며, 그 북쪽에는 양이정(養怡亭)을 세우고 청자로 덮었다."
196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실시한 강진군 사당리 가마터 발굴에서는 청자기와편<사진>이 300여 점이나 출토되어 이 기사가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기와 중에는 '누서남면(樓西南面)' '서루(西樓)' 등 지붕의 위치를 가리키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진 것도 있어 철저한 설계에 의해 청자기와가 번조되었음을 말해주었다. 실제로 개성 만월대 고려궁궐터에서도 청자기와편들이 일부 발견되었다.
청자기와 중에는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것이 있다. 수키와에는 음각으로 꽃무늬를 넣었다. 지붕 끝에 얹는 암막새에는 넝쿨무늬를, 수막새에는 연주(連珠)무늬 테두리 안에 탐스러운 모란꽃무늬를 새겼다. 막새기와의 무늬는 칼을 옆으로 뉘어 반양각으로 깎아냄으로써 또렷이 도드라지게 하였다. 그리고 유약이 얇게 입혀져 옅은 회색빛을 띠면서 마치 백상감을 한 것과 같은 문양효과가 있다. 그러나 아직 상감기법을 구사한 것은 아니었다.
2009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은 개관 100주년을 맞으면서 기념 상징물로 거울못 한쪽에 정자를 짓고 양이정의 예에 따라 청자기와를 올리고 '청자정(靑瓷亭)'이라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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