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16] 기메박물관의 홍종우

yellowday 2011. 7. 1. 14:52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을 얘기하자면 김옥균 암살자로 더 잘 알려진 홍종우(洪鍾宇·1854~1913)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888년 샤를르 바라 탐사단이 한국에 와서 입수해간 유물들을 정리한 큐레이터가 바로 홍종우였다. 그는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나 가난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다 고금도에서 살았다. 1888년, 개항과 개화바람이 한창 불자 그는 프랑스로 유학하여 법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일단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사히신문사 식자공으로 2년간 근무하여 여비를 마련한 그는 1890년 12월, 마침내 파리에 도착하여 소르본대학 근처에 숙소를 마련했다.

홍종우는 파리에 머물면서 '여행가의 모임'이라는 고급 사교 단체의 초청을 받아 조선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강연도 했으며 항시 상투를 틀고 한복 차림을 하여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1892년 바라 탐사단 수집품이 기메박물관으로 이관되면서 홍종우는 연구보조자로 채용되어 이를 장르별로 분류하고 불어와 한국어로 유물 카드를 만들었다. 그의 노력으로 기메박물관은 1893년부터 한국실을 개관했다.

한편 홍종우는 소설가 로니(J. H. Rosny)와 함께 춘향전을 번역하여 1895년에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사진) 발레의 거장 미하일 포킨의 안무로 몬테카를로에서 1936년에 초연된 '사랑의 시련'은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심청전', '조선 점(占)'도 번역 출간하였다. 독학으로 배운 그의 불어 실력이 놀라울 뿐이다.

1893년, 그는 체류 3년 만에 귀국길에 올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김옥균을 상해에서 암살하고 이후 고종의 비호하에 대한제국의 요직을 역임하다 1913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홍종우는 김옥균을 암살했다는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 찍혀 있지만, 한때는 조선의 문화를 프랑스에 알리는 데 열과 성을 다했던 최초의 개화인이었다는 사실이 기메박물관 유물카드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