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에서 '창덕궁' 특별전(8월 24일까지)이 열려 구경 갔다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제까지 볼 수 없던 참신한 전시 방식에 잠시 발을 멈추고 말았다. 박물관 전시들은 대개 유물의 나열 방식에 그 초점이 맞춰지곤 했다. 그러나 이 전시는 관객을 구중궁궐 속으로 끌고 들어가 창덕궁의 속속들이를 보여주는 듯한 생생한 구성을 하고 있다. 우리 박물관 문화의 발전상을 실감케 하는 감동적인 전시회다.
전시장 초입에는 길이 5.8m의 '동궐도'(국보 249호)를 실물대로 재현하여 장엄했던 옛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항공사진을 찍듯이 부감법으로 담아낸 이 장대한 병풍은 대각선의 시각 구성이 아주 슬기롭다. 진경산수의 예술적 성취에 기초한 조선시대 기록화의 최고 명작이다. 현재의 동궐은 그림의 15%밖에 안 된다.
창덕궁에서 일어난 중요 행사를 그린 대폭 병풍도 여러 점 전시되었다. 헌종대왕 결혼식 병풍(보물 733호), 순원왕후의 육순잔치 병풍은 왕실문화의 품위를 실감 나게 전해준다. 잔치에서도 남녀 구분이 엄격하여 한 칸엔 여자, 한 칸엔 남자만 모여 있다. 촛대는 엄청나게 크고, 접는 의자는 아주 멋쟁이이고, 현판 글씨는 고상하며, 매화틀이라는 실내 변기는 귀엽기만 하다.
한 나라의 왕실문화란 그 나라, 그 시대 문화 역량의 최고치를 반영한다. 한 예로 효(孝)를 중시했던 조선시대에는 서원과 양반집에는 조상의 초상을 모시는 영당(影堂)이 있다. 궁궐에선 선원전(璿源殿)에 역대 임금의 어진을 봉안하고 보름마다 임금이 직접 다례를 올렸는데 이 선원전의 신실(神室·사진)은 대단히 아름답고 장엄하다. 옥좌·일월오악도·꽃무늬창살로 구성된 궁궐의 신실은 민가의 영당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문화적 수준을 보여준다.
그동안 우리는 왕실문화의 진면목을 볼 기회가 적었다. 다행히 6년 전, 국립고궁박물관이 개관되어 이렇게 왕실문화의 진수를 접하게 되니 조선시대 문화사가 새롭게 살아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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