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19] 영조의 은도장 '효손(孝孫)'

yellowday 2011. 7. 21. 00:51

'조선왕조실록' 영조 52년(1776) 2월 7일자에는 영조가 '효손(孝孫)'이라는 은도장을 영의정을 비롯한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조에게 내려주는 기사가 나온다. 왕세손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승정원일기'의 기사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효심에 감동하여 직접 효손이라고 쓰고 은인(銀印)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이 은도장과 관계된 일괄유물이 있다. '효손 83서(書)'라고 새겨진 거북이 모양의 은도장이 동판으로 어필은인(御筆銀印)이라고 붙인 주칠상자에 들어 있으며, 이때 영조가 직접 쓴 '유세손서(諭世孫書)'라는, 손자에게 이르는 글이 가죽통에 들어 있다.

"아! 해동 300년 우리 조선왕조는 83세의 임금이 25세의 손자에게 의지한다. 오늘날 종통(宗統)을 바르게 하니 나라는 태산반석처럼 편안하다…승정원일기의 세초(洗草;삭제)는 실로 너의 뜻을 따른 것이다. 또 듣건대 어제 무덤에서의 네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눈물로 옷깃을 적시었다고 한다….

국초(國初)에 보인(寶印)을 만든 예에 따라 특별히 효(孝) 자로 그 마음을 세상에 드러내며 이 일을 후대의 본보기로 삼으니 산천초목과 곤충인들 누가 이 뜻을 모르겠는가…. 아. 내 손자야! 할아버지의 뜻을 체득하여 밤낮으로 두려워하고 삼가서 우리 300년 종묘사직을 보존할지어다…."

그리고 한 달 뒤인 3월 5일 영조는 세상을 떠났다. 정조는 이 도장과 유서를 항시 지니고 다녔다. 행차 때도 들고 오게 하여 어깨끈이 닳아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고 있다. 이 은도장을 보고 있자면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일어난 아비인 영조의 한과 자식인 정조의 눈물, 그리고 나라의 종통을 지키려는 왕가의 몸부림이 절절히 다가오며 그 내용의 간절함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때문에 도장이 멋지고, 주칠상자가 아름답고, 영조의 글씨가 대단히 품위있다는 생각은 한참 뒤에나 일어나게 된다. 확실히 예술은 형식보다 내용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