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제압출여래좌상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의 창시자인 에밀 기메는 말하기를 "내가 설립한 취지대로라면 기메박물관은 철학의 공장이며, 예술품은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였다. 이런 생각에서 기메는 유물수집에 열을 올렸다. 1878년엔 직접 일본을 방문했고 1888년에 샤를르 바라(Varat) 탐사단이 한국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인수하였다.
중국에는 아예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파견하였다. 1889년에 에두아르 샤반느 탐사단을 4년간 중국 북부지방에 파견하였고, 1907년에 다시 2차 탐사단이 떠났는데 이때 집안(集安)에서 '산연화문총'을 발견하여 고구려 고분벽화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1906년엔 돈황문서로 유명한 폴 펠리오 탐사단이 떠났다. 제국주의는 이처럼 식민지 진출을 위한 군사적, 상업적 침탈과 동시에―어쩌면 그것을 위해―문화재 탐사를 적극 시행했다. 그리하여 기메박물관은 중국, 일본 유물을 각기 1만 점 이상 소장하게 되었고 우리 문화재도 1000점을 헤아린다.
바라 탐사단이 수집한 30여 점의 불상 중에는 희귀한 유물이 적지 않다. 그중 철제압출여래좌상(鐵製押出如來坐像)은 조선 선조18년(1585)에 대시주(大施主) 유회동(兪晦同)이 발원 조성하였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 귀중한 불상이다. 철판을 뒤에서 두드려 뒷면을 보면 앞면과 똑같은 모습이 요면(凹面)으로 남아 있다. 이런 판불은 국내엔 단 한 점도 없다.
흔히 조선시대 불상은 조각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이 불상을 보면 삼국, 통일신라, 고려 불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어딘지 선비문화의 분위기가 서려 있다. 절대연대와 시주자까지 알 수 있어 국내에 남아 있었으면 국보, 보물로 대접받았을 것이련만 일찍이 고국에서―아마도 헐값에―팔려나가 스포트라이트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고도 미안한 마음이 일어난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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