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亭子

'의리'란 탈을 쓴 불의

yellowday 2016. 11. 29. 16:25

입력 : 2016.11.29 03:00

길해연·배우
길해연·배우

어린 시절,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든 동화가 있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우는 아기 물어 가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도 아닌, 진정한 친구를 찾는 그 이야기가 나는 세상에서 젤로 무서웠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람을 죽였으니 시체를 숨겨 달라'며 친구들을 찾아다니게 한다. 아들의 친구들이 모두 외면하자 아버지는 쯧쯧
혀를 차며 자신의 친구를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사정을 들은 그 친구는 어서 들어오라며, 남이 보면 큰일이라며 서둘러 친구가 가져온
시체를 매장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보아라, 이것이 진정한 친구니라" 하며 껄껄 웃으며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안심하게 친구,
자네가 묻은 것은 죽은 돼지라네."

친구가 불행과 고난을 당했을 때 외면하지 말고 함께하라는 교훈을 씹고 또 씹어 억지로 집어삼키면서 어린 나는 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느님, 부디 친구가 사람을 죽였다고, 같이 묻자고 찾아오지 않게 해주세요." 어린 마음에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에게
등을 돌리는 비겁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지만, 친구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덮어주는 게 걸렸던 것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어린 나는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그 친구를 향해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수도 없이 반복하다 혼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 이야기는 아주 나쁘다." 의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렸음에도 여전히 거적을 등에 진 이야기 속의 친구는 요즘도 가끔 찾아와 문을 두드리곤 한다. "친구, 내가 사람을 죽였네.

나 좀 도와주게." 나는 당당하 게 문을 열고 그 친구에게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얘기한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자네는 친구도

아니야" 하며 돌아서고 내 등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의리'라는 이름으로 불의를 눈감게 하는 것, 분명히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자유롭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내 머릿속 책장에서 이 이야기는 여전히 무서운 이야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whek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