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識있는 서재

韓·中의 '구동존이'

yellowday 2016. 9. 8. 18:18
  •                 

입력 : 2016.09.08 08:59

안용현 정치부 차장
중국의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는 1949년부터 1958년까지 외교부장을 겸직했다. 혁명 지도자였던 저우언라이를 중국 외교의 상징으로 만든 건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반둥 회의)'였다. 당시 29개 참가국은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정치 체제 등에서 차이가 컸기 때문에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때 저우언라이는 '구동존이(求同存異·공통점은 추구하고 차이점은 남겨두다)'라는 말을 던졌다. 이 한마디로 반둥 회의는 급진전하며 비동맹, 내정 불간섭, 상호 불가침 등의 내용이 담긴 '평화 10원칙'을 도출해냈다.

'구동존이'는 저우언라이 이후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외교적 난제를 만날 때마다 가장 즐겨 쓰는 용어가 됐다. 덩샤오핑이 1979년 미국과 수교하면서 대만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도, 1992년 한국과 수교를 앞두고 북한이 걸림돌이 됐을 때도 '구동존이'를 앞세웠다. 2011년 초 백악관을 방문한 후진타오 당시 주석은 "구동존이 정신으로 등고망원(登高望遠·높은 데서 멀리 바라봄)하자"고 했다. 60년 전 저우언라이가 설명한 '구동존이'는 이렇다. "큰 공통점에도 작은 차이점이 있고, 큰 차이점에도 작은 공통점이 있다. 문제나 갈등에만 집착한다면 서로 공동의 이익을 놓친다"는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항저우 서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놓고 한·중 관계가 '역대 최고'에서 '역대 최악'으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항저우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예상대로 박 대통령은 사드 당위성을, 시 주석은 사드 반대를 강조했다. 양국 간의 '접점'은 보이지 않았다. 시 주석은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한다)'이라는 성어까지 쓰며 중국이 한국 독립을 지원했던 역사를 거론했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중국의 옛 도움을 잊는 행동이라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나의 넓지 않은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안위가 달렸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사드 때문에 한·중 관계가 뒤틀리면 서로 손해라는 것은 중국도, 한국도 잘 안다. 중국이 끝까지 '사드 몽니'를 부리면 중국의 '펑유(朋友·친구)'는 점점 더 미국 쪽으로 다가갈 것이다. 중국이 이를 견제하려고 북한을 끌어안으면 '핵 도미노'가 한국·일본을 넘어 대만까지 닿을 수 있다. 우리도 중국을 멀리해선 통일 시대를 준비하기 어렵다.

이번에 두 정상이 한목소리로 '구동존이'를 언급한 것은 사드가 한·중 관계를 망쳐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깔렸기 때문일 것으로 기대한다. 시 주석은 부주석 시절인 2009년 방한했을 때도 '구동존이'를 강조했다. 지난 5일 박 대통령은 '구동존이'를 넘어 '구동화이(求同化異·같은 점을 찾고 다른 점은 없앰)'를 말했다. 이제는 한·중 모두 이 말을 실천할 때가 됐다. 풀리지 않는 문제는 맨 뒤로 돌리는 것이 답일 때가 있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