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7.23 03:00
[곽아람 기자의 그림 앞에 서면]
미술관에 갈 때마다 사람과 그림 간에도 인연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그림 중 유독 마음을 끄는 그림이 있다. 그 앞에 한참 서 있다 보면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렇게 그 그림을 알게 된다.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게 된다. '왜 하필 그 그림이었을까' 묻다 보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은 인연이었다고.
얼마 전 파리 출장 중 오랑주리 미술관에 들렀다. 모네의 '수련'을 보러 간 것이었지만 정작 시선을 가로챈 건 다른 그림이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1892년작 '피아노 앞 소녀들'.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있던 달력에서 보던 그림이라 반가운 마음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얼마 전 파리 출장 중 오랑주리 미술관에 들렀다. 모네의 '수련'을 보러 간 것이었지만 정작 시선을 가로챈 건 다른 그림이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1892년작 '피아노 앞 소녀들'.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있던 달력에서 보던 그림이라 반가운 마음에 눈을 떼지 못했다.
'피아노 앞 소녀들'은 르누아르가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그린 것이다. 뤽상부르 미술관에 걸 작품을 찾고 있던 담당 공무원은 르누아르의 기존 작품을 사려고 생각했지만 이 프로젝트의 검토를 맡은 시인 말라르메가 신작을 구입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의뢰라는 사실에 큰 부담을 느낀 르누아르는 같은 그림을 여섯 점이나 그렸다. 다섯 점은 유화, 한 점은 파스텔화인데 인물의 표정과 자세, 배경의 세부 묘사가 조금씩 다르다. 피아노 앞 소녀들이라는 화재(畫材)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해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까지 전해진 것. 르누아르는 흔해 빠진 이 주제를 따스한 색채, 우아하고 다정한 인물 표현으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1892년 4월 20일 프랑스 정부는 여섯 점 중 한 점을 골랐고 5월 2일 4000프랑에 인수했다. 지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정부 구매작은 이내 논란에 휩싸였는데, 나머지 그림들을 본 사람들이 "정부가 여섯 점 중 가장 훌륭한 그림을 고르는 데 실패했다"고 쑥덕댔기 때문이다.
오랑주리 미술관 소장품은 여섯 점 중 가장 먼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스케치 단계의 이 그림엔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피아노 위 꽃병이 없다. 배경은 물론이고 인물과 피아노의 형태도 명료하지 않다. 그렇지만 화폭을 가득 채운 르누아르 특유의 화사하고 밝은 색채는 형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음악적으로 느껴진다. 그림 앞에 서면 소녀들이 재잘대며 피아노 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다. 르누아르는 이 그림을 평생 지니고 있었다. 그림은 그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다.
미완성작인 오랑주리 미술관의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이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완성작보다 못한 것일까? 잠시 의문을 가져보다가 이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무심코 지나치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오랑주리 소장품이 이미 내겐 최고의 '피아노 앞 소녀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랑주리 미술관 소장품은 여섯 점 중 가장 먼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스케치 단계의 이 그림엔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피아노 위 꽃병이 없다. 배경은 물론이고 인물과 피아노의 형태도 명료하지 않다. 그렇지만 화폭을 가득 채운 르누아르 특유의 화사하고 밝은 색채는 형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음악적으로 느껴진다. 그림 앞에 서면 소녀들이 재잘대며 피아노 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다. 르누아르는 이 그림을 평생 지니고 있었다. 그림은 그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다.
미완성작인 오랑주리 미술관의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이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완성작보다 못한 것일까? 잠시 의문을 가져보다가 이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무심코 지나치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오랑주리 소장품이 이미 내겐 최고의 '피아노 앞 소녀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릴 적 좋아했던 달력 그림 원화를 30년 후 이국(異國)의 미술관에서 만나게 되는 일은 신비스럽다. 오르세에서도 메트로폴리탄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 이번에 오랑주리에서 그 경험을 한 것은 그 시간과 그 공간에서만 작용하는 어떤 우주적인 힘이 그림과 나를 이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결같이 대답해 왔다. 당신 마음을 끄는 그림, 그 그림이 정말로 좋은 그림이라고.<끝>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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