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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代作 논란 수사… 검찰이 검토했다는 '미국인의 자화상'

yellowday 2016. 6. 12. 19:47

입력 : 2016.06.11 03:00 | 수정 : 2016.06.12 10:18

[곽아람 기자의 그림 앞에 서면]

조영남의 그림 대작(代作) 논란 수사 관련 기사를 읽다가 "검찰은 '아메리칸 고딕'이라는 중세시대 인물화 작품을 놓고 1992년 미국에서 저작권 문제를 다룬 재판을 검토했다고 한다"는 문장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은 중세시대 인물화가 아니다. 미국 화가 그랜트 우드(1891~1942)의 1930년 작 유화다. 견고한 뾰족 지붕 집 앞에 완고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녀를 담은 이 그림은 '미국의 아이콘'이라 할 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그림 속 집은 우드의 고향 아이오와주(州)의 전형적 농가. 중세 유럽의 웅장한 고딕 건축에서 차용한 첨두(尖頭) 아치 창(窓)과 가파른 지붕이 특징이다. 석조 건축의 고딕 양식을 목조건물에 적용해 '목수(carpenter) 고딕'이라고 한다. 이 건축 양식에 흥미를 느낀 우드는 아이오와주 엘던의 집 한 채를 '아메리칸 고딕'의 모델로 삼았다.

아메리칸 고딕 외
그랜트 우드의 1930년작 ‘아메리칸 고딕’. 오른쪽 사진은 스티브 조핸슨의 패러디 작품.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고향의 지역적 특색을 화폭에 담았던 우드는 건축양식 못지않게 엄숙하고 보수적인 미국 중서부 지역 사람들을 집과 함께 그리고 싶었다. 그는 길고 곧은 얼굴 선이 집과 닮은 치과 의사 바이런 매키비와 자기 누이동생 낸을 모델로 삼았다. 우드는 낸에게 유행 지난 옷을 입히고 어머니의 낡은 카메오 브로치를 달게 했다. 매키비의 커다란 손엔 농부의 상징인 쇠스랑을 쥐여 주었다. 매키비는 "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렵다"며 모델로 서길 꺼렸지만 우드는 "아무도 못 알아보게 그릴 것이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다.
그림은 1930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연례 전시회에 처음 소개됐다. 미국적 소재를 재치 있게 표현한 신선함이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았다. 우드는 '미국 미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 불리며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아버지와 노처녀 딸을 표현하려 했던 화가 의도와는 무관하게 언론은 "농부 부부를 그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이오와 사람들을 조롱했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우드는 "미국인을 그렸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관람객들이 작품 모델을 금세 알아채는 바람에 매키비와 우드는 한동안 소원해졌다. 그림은 대공황 여파로 혼란스러웠던 미국에 건실한 농경 사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사랑받았다. "'모나리자' 다음으로 많이 풍자 대상이 됐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수없이 패러디됐다.
우리나라 검찰이 검토했다는 판례는 이 그림 속 인물들을 해골 록밴드로 바꾼 패러디 작품에 대한 것이다. 1987년 미국의 한 잡지사가 록밴드 '그레이트풀 데드' 기념호 표지로 쓰려고 화가 스티브 조핸슨에게 의뢰한 그림이다.

그림이 인기를 끌자 잡지사는 조핸슨의 허락이나 저작권 표시 없이 포스터를 제작했다. 조핸슨은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잡지사는 "해골 등 패러디의 구체적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며 공동 저작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아이디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며 저작 권은 직접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만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사건으로 함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그랜트 우드는 조영남과는 결이 다른 화가다. 우드는 정교한 디테일의 절정을 구가한 북유럽 르네상스 거장들에게 매혹됐다. 세부 묘사가 정확한 사실주의적 그림을 이상(理想)으로 삼았다. 화가의 손맛이 살아있는 정직한 그림, 우드의 아우라는 그 우직한 장인 정신에서 나왔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