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본사(敎區本寺)의 하나로 그 경내(境內)는 2009년 12월 21일에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다.
불국사 창건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그 중 하나는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로,
여기에 보면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조하게 하여 봉안하였고, 670년(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고, 그 후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하였다.
불국사 가는 길
불국사 자하문(佛國寺紫霞門) - 청운교, 백운교
불국사 들어 가는 길에 서 있는 홍송
《법화경(法華經)》에 의하면 “부처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이 경을 설파할 때
다보여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둔 탑이 땅 밑에서 솟아나오고,
그 탑 속에서 소리를 내어 부처의 설법을 찬탄하고 증명하였다”한다.
이를 근원으로 세워진 탑이 다보탑이다.
이 탑의 구조는 대개 옥개(屋蓋) 아래 상층(裳層)을 붙인 조형을 이루고 있다.
중국에서는 732년에 무현의 남동쪽에 처음 세웠으며,
한국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에 세웠다.
다보탑 - 탑 네 귀퉁이를 지키고 있던 사자상이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다.
누가 훔쳐 갔는지 자수하여 광명찾자!
석가탑의 위대함이 다시 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66년 해체·수리에서 나온 사리장엄구에서였다.
1966년 9월 도굴범에 의해 석가탑이 훼손되어 10월 전면적인 해체·수리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2층몸돌 윗부분에서 집 모양의 사리기와 사리병 등 각종 장엄구가 발견되었다.
특히 함께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종이질이나 글씨체가 8세기 초기의 것이며,
너비가 비록 8㎝에 지나지 않지만 길이는 무려 6m에 이르는 두루마리 경전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밝혀졌다. 다보탑은 1925년에 일본 사람에 의해 해체·수리되었으나
사리장치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와 관련된 보고서나 정황을 알 수 있는 간단한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이때 불상 두 구가 발견되었다는 기록만이 있을 뿐 다른 사리구들에 대하여는 전혀 알 수 없다.
석가탑 발견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사리장엄구1966년 해체·수리시에 2층몸돌 윗부분에서 각종 공양구와 사리병이 발견되었다. 특히 함께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길이가 무려 6m 이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관 인쇄물이다. ...네이버 지식
석가탑(불국사삼층석탑)은 보수중! - 안전판으로 가려져 있어 볼 수가 없었음
석가탑(무영탑)의 전설
남편 아사달이 그리워 백제에서 신라로 찾아온 아사녀에게 주지스님은 석가탑이 완성될 때까지 만남을 만류하며,
석가탑이 완성되면 이곳에 탑의 그림자가 비칠 것이라 한다.
아사녀는 탑의 그림자기 비치길 기다리다 치처서 그림자 없는 연못(영지) 속에 몸을 던진다.
석가탑을 완성하고 못 가로 찾아온 아사달은 아내의 슬픈 소식을 듣고는
마지막 석불을 완성하고 아사녀의 뒤를 따라 영지 못에 몸을 던진 애달픈 이야기이다.
이후 사람들은 그림자가 나타난 다보탑을 유영탑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은 석가탑을 무영탑이라고 한다.
불국사 옆 언덕배기에 피어 있는 연분홍 진달래
《불국사 사적(事蹟)》에서는 이보다 연대가 앞선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刱)되었다고 하였다.
이상으로 미루어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이 확실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25칸,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극락전 12칸,
무설전(無說殿) 32칸, 비로전(毘盧殿)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약 2,000칸)이 있었다고 한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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