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파리로 날아간 옹녀, 관객 궁둥이를 들었다 놨다

yellowday 2016. 4. 18. 16:02

입력 : 2016.04.18 03:00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프랑스 파리 초연서 뜨거운 반응]

첫회 매진, 이후 공연도 80% 점유… 옹녀·변강쇠 첫만남서 관객 폭소
김성녀 감독, 객석서 추임새 넣자 엄지손가락 들며 신기해하기도



"좌상(座上) 손님네 모두 성세태평(盛世太平)하옵소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이하 '옹녀', 고선웅 극본·연출, 한승석 작창)가 마지막 합창 장면에 이르자,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대극장을 가득 메운 950명의 청중이 일제히 국악 장단에 맞춰 박수를 쳤다.

커튼콜을 마치고도 박수와 환호가 멈추지 않아 막을 한 차례 다시 올려야 했다. 지난 14일 밤(현지 시각),
유럽 공연 예술의 수도 파리에서 열린 첫 창극 공연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대극장에서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이 끝나자 관객 950명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이날 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현지 관객이었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 대극장에서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공연이 끝나자
관객 950명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이날 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현지 관객이었다. /국립극장 제공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남성 관객 라파엘 주네(30)씨는 "전혀 알지 못했던 매력적인 세계에 빠진 것 같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했다. 여성 관객 외제나 카라라(29)씨는 "성(性)에 대한 얘기가 유머와 섞인 것이 신선했는데, 음란하지
않고 재미있었다"며 "첨단 테크놀로지 이미지만 갖고 있던 한국에 이런 문화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했다. 한 60대 관객은
"한국은 유교 문화가 지배할 거라는 선입견이 깨졌다"고 말했다.

국립극장과 국립창극단이 한·불 상호 교류의 해를 맞아 '마담 옹(Madame ong)'이란 제목으로 올린 '옹녀'는 2014년 국내 초연돼
창극 역사상 초유의 26일 장기 공연을 이어가며 화제를 낳았던 작품이다. '변강쇠전' 주인공을 옹녀로 바꿔 색녀(色女)가 아니라
운명을 개척하는 적극적인 여성상을 표현했고, 제8회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방한한 테아트르 드 라 빌의 에마누엘 드마르시-모타 극장장의 눈에 띄어 파리 공연이 이뤄지게 됐다.
파리를 대표하는 극장으로 150년 역사를 지닌 테아트르 드 라 빌의 2015~2016 시즌 프로그램의 하나로 '옹녀'가 선정된 것.
드마르시-모타 극장장은 "창극은 오페라 스타일의 음악에 이야기가 갖는 힘이 있다"며 "수준 높은 파리 관객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 '수궁가' 등이 유럽 무대에 선 적이 있으나, 현지 극장으로부터 개런티(약 1억원)를
받고 해외에서 공연한 창극은 '옹녀'가 처음이다.

변강쇠 역의 최호성(왼쪽)과 옹녀 역의 이소연.
변강쇠 역의 최호성(왼쪽)과 옹녀 역의 이소연. /국립극장 제공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보던 현지 관객들은 옹녀(이소연)가 등장해 남편을 줄줄이 잃은 사연을 이야기하다

"열여섯에 얻은 입 냄새 나는 오 서방은 당창병에 튀고"라고 노래하는 대목에서부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변강쇠(최호성)와 옹녀가 처음 만나는 야한 장면에선 폭소를 참을 수 없다는 듯 허리를 굽히며 웃었고, 남녀가 서로의

은밀한 부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창(唱)에선 번역가 한유미씨가 만든 프랑스어 자막을 보고 파안대소했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객석에서 추임새를 넣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했다.

우리와 '웃음 코드'가 다른 대목도 있었다. 가요 '하숙생'을 창으로 부른 대목에선 국내 공연과 달리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옹녀가 변강쇠를 되찾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에서 칼 오르프의 '오 운명의 여신이여'가 가야금으로 연주되자

웃음이 터졌다. 총각귀신과 처녀귀신이 등장해 결혼 못한 처지를 하소연하는 장면에선 유난히 큰 웃음이 나왔다.

'옹녀'의 14~17일 파리 4회 공연 중 첫날은 매진됐고, 나머지 날도 80% 이상의 점유율을 보였다.

이번 공연은 한국 대중문화에 이어 전통문화가 본격적으로 서구에 진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중국 경극이나 일본 가부키뿐 아니라 한국의 창극도 있다는 것을 세계인이 알게 될 것"이라며

"내년에도 창극 해외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연출가 고선웅씨는 "깜깜한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어서 눈물이

난다"며 "우리 이야기도 세계의 공통어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옹녀'는 5월 4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다시 공연된다. (02)2280-4114~6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