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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님을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3000배를 시키는가?" - 靑年 법정 曰 "성철 스님! 질문 있습니다"

yellowday 2016. 2. 16. 07:54

입력 : 2016.02.16 03:00

1967년 녹음된 '백일법문' 도중 성철·법정 스님 問答 내용 50년 만에 책으로 엮어 출간

1973년 무렵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가운데)과 법정 스님(오른쪽), 그리고 훗날 송광사 주지를 지낸 현호 스님이 함께 자리했다.
1973년 무렵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가운데)과 법정 스님(오른쪽), 그리고 훗날 송광사 주지를 지낸 현호 스님이 함께 자리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이건 멍청해서 묻는 게 아니고요…."

1967년 해인사의 겨울은 뜨거웠다. 그해 해인사 초대 방장에 오른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의 '백일법문'이 열렸던 것.
전국의 선승(禪僧)들이 해인사로 몰려 이미 당대의 전설이 된 성철 스님의 사자후(獅子吼)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런데 30대 젊은 스님의 질문이 법문을 끊고 들어왔다. 법정(法頂·1932~2010) 스님이었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이 '백일법문' 중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이 50년 만에 공개됐다. 최근 '설전'(책읽는 섬),
즉 '눈싸움(雪戰)'이란 제목으로 발간된 책을 통해서다. 두 스님의 문답이 책으로 엮이게 된 것은 '백일법문' 녹음 테이프를
풀던 중 법정 스님이 등장하는 대목을 발견한 덕분이다.

내용은 지금 읽어도 '당돌'하다. "필요하면 그때그때 물어야지, 법문 끝나고 나서 나중에 질문하면 그때의 감정이 없어지니까
질문에 힘이 없어질 것 같습니다"라며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중도(中道) 이론을 좀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중국 선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등등으로 꼬치꼬치 이어진다. 중국 선종(禪宗)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되는
육조 혜능이 글도 모르면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깨쳤다는 부분에 대해 성철 스님이 "금강경 한문이 아니라 중국말을 듣고
깨쳤다"고 답하면 "말이나 문자나 같은 것 아니냐?"고 대든다.

자신의 수행뿐 아니라 후학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도 추상같기로 유명한 성철 스님이었지만 젊은 법정 스님의 '도발'에 대해서는
너무도 친절히 답변해줬다. 불교의 핵심 사상인 중도 사상에서부터 자신의 출가 사연까지 모든 것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법정 스님의 질문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법문을 듣는 다른 스님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속의 나이 20년, 출가 나이[法臘·법랍]도 20년 차이가 나는 두 스님이지만 진리를 놓고 묻고 대답하는 순간만큼은
구도(求道)의 길을 걸어가는 선후배였을 뿐이었다.

책에는 1982년 두 스님의 대담도 실렸다. 1967년 이후 15년 만이었다. 그 사이 성철 스님은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고,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비롯한 에세이로 필명을 날리고 있었다. 대화 내용 역시 15년 전에 비해 묵직하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날카롭다. 법정 스님은 짐짓 "왜 스님을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3000배를 시키는가" "간단하게 불교를
뭐라 설명하겠는가"라고 묻고 "사람이… 정말 성불할 수 있는가" "(성불하는 데 언어문자는 필요 없다고 하면) 우리 '팔만대장 경'은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런 진지한 문답 가운데 성철 스님은 자신의 좌우명이 '영원한 진리를 위하여 일체를
희생한다'는 것이라며 "나는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50년 전, 35년 전의 대담을 통해 이제는 이승을 떠난 두 스승의 진리 탐구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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