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06 19:25
▲ 조승상부 입구 앞 광장에 세워진 조조의 석상.
삼국지연의에서 난세의 간웅으로 불리던 조조. 그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쉬창(许昌)이다.
196년 조조는 한나라 황제 헌제를 쉬창으로 데려와 이곳을 위나라의 수도로 삼았다.
그 후 25년간 이곳에 머무른 그는 곳곳에 삼국시대의 유적과 문화를 남겼다.
현재 쉬창에는 조조가 업무를 보던 승상부(丞相府), 조조가 관우에게 선물한 춘추루(春秋楼),
조조와 관우가 이별한 파릉교(灞陵桥) 등이 남아 있다. 이처럼 쉬창 여행에서 조조의 이야기는 뗄 수 없다.
▲ 조승상부 광장에서 볼 수 있는 동판 부조.
조조가 승상이 된 뒤 업무를 처리하던 조승상부는 지난 2009년 조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존 유적지에 새롭게 조성한
삼국 문화 테마파크다. 이곳에선 삼국시대 많은 발전을 이룬 그의 정치, 군사, 문학적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승상부 입구로 들어서면 '승상부원(丞相付苑)'이라고 적힌 패방과 조조의 기개와 호방함을 느낄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조조 석상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승상부에 들어서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조조의 동판 부조를 볼 수 있다. 이는
조조가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길에 지었던 "관창해(观沧海,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라는 시를 형상화한 그림이다.
조승상부에서 가장 처음 마주하는 1층짜리 건물은 조조가 문신과 무장들을 불러놓고 국정을 논했던 의사당(议事厅)이다.
조조는 늘 이곳에서 부하들과 토의를 걸쳐 일을 신중히 결정했다고 한다. 밀랍인형으로 꾸며놓은 이곳에서 서로 의견을
얘기하려 손을 들고 있는 문무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의사당에서 국정 회의하는 모습(좌), 경극 가면 형태로 전시된 삼국지 주요인물(우).
이처럼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가 가능했던 것은 조조의 인재를 우대했기 때문이다. 조조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의 인재 기용방식은 하나같이 칭찬한다. 조조는 건안 15년(210년)에 실용주의 인재 등용정책인 구현령(求贤令)을 선포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데려다 쓰는 개방 인재정책을 썼다.
의사당 뒷마당에는 삼국지 주요 인물을 경극(京剧)가면 형태로 전시해놨다. 빨간색은 관우, 하얀색은 사마의, 살구색 조자룡 등
가면 뒤쪽에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하자.
▲ 춘추루의 관성전(상), 관우의 동상(하).
유비의 의형제인 관우를 자신의 수하로 삼고 싶었던 조조는 관우에게 춘추루(春秋楼)를 주며 관우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조조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밤마다 춘추(春秋)를 읽으며 유비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고, 그 후 이곳은 관우의
변함없는 의리를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또한 이곳은 매년 제사를 지내며 관우를 기리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춘추루는 청나라 때 복원된 것으로 지난 1995년 쉬창시가 관광지로 재조성했다. 춘추루의 핵심 건물인 관성전(关圣殿)은
관우의 동상이 모셔져 있는 건물로 높이 15m의 관우 좌상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관우의 충절을 나타낸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전투에서 패퇴하던 유비의 두 부인이 조조의 포로로 잡혀오자
관우는 자신의 집 안채를 기꺼이 내주었다. 관성전 왼쪽에 있는 건물에 가면 이 일화를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다.
▲ 파릉교에서 이별하는 조조(왼쪽)와 관우(오른쪽)를 조각한 석벽.
관우는 조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유비에 대한 충절을 꺾지 않고, 끝내 조조의 곁을 떠난다. 관우와 조조의 이별했던 장소가
바로 파릉교(灞陵桥)다. 그리고 그 이별 장면을 파릉교 입구에 조각해 놓았다. 조각상의 왼쪽이 조조, 오른쪽이 관우다.
파릉교로 가는 길에 청매정(靑梅亭)이라는 정자 하나가 있다. 여기에는 조조와 유비의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서 사태를
관망하듯 실력이 있으나 드러내지 않는 것) 이야기가 담겨 있다.
▲ 최근에 복원한 파릉교(상), 청대부터 있던 파릉교(하).
소설 삼국지에 따르면 조조가 "지금 천하의 영웅이라 할 사람은 그대와 나뿐"이라며 유비의 마음을 꿰뚫는다.
깜짝 놀란 유비는 들고 있던 수저는 떨어트렸고, 마침 치던 천둥에 놀란 척 핑계를 대며 위기를 모면한 일화가 있다.
이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형상화한 조각상이 파릉교에 있다.
이곳에는 두 개의 파릉교가 있다. 하나는 한나라의 당시 그림을 참고해 1990년 재현해놓은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청대에 남아 있던 파릉교를 다시 복원한 것이다. 이 다리는 관제묘 안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다.
▲ 관우의 성품을 대변하는 네 글자가 적힌 관림의 입구.
쉬창 외에도 허난성 뤄양의 '관우의 묘'는 삼국여행에서 빠져선 안 되는 관광지다. 앞서 언급했던 관우는 공자와
더불어 중국 2대 성인으로 불리는 삼국시대 촉나라의 무장이다.
중국에서는 황제의 무덤에 '릉(陵)'을 붙이고, 신의 경지에 오른 성인들의 무덤에는 '림(林)'을 붙이는데, 관우의 묘에
'림'을 붙여 '관림(关林)'이라 부른다. 이로써 중국인이 얼마나 관우를 존경하는지 느낄 수 있다.
관림 입구에서는 관우의 성품을 대변하는 충(忠), 의(義), 인(仁), 용(勇)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입구를 지나면 관우의 상징인 적토마와 청룡언월도가 양쪽에 자리하고 있다.
▲ 죽은 뒤 신이 된 관우를 모신 사당 내부(상), 실제 관우 머리가 묻혀 있는 관림(하).
관림 중심부에 위치한 대전(大殿)은 높이 26m의 궁전식 건물이다. 그 안에 있는 관우상은 용이 조각된 용상에 앉아
몸에 용포를 걸치고 있어 마치 황제의 모습 같이 느껴진다. 관우는 손권에게 참수되어 머리와 몸이 따로 묻혀있다.
관림은 관우의 머리만 묻혀 있는 곳이며, 관우의 몸체가 묻힌 곳은 후베이성의 관릉(关陵), 관우의 영혼이 묻힌 곳은
그의 출생지인 해주(解州)의 관제묘라고 한다.
관우의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벽돌벽이 있고, 돌문에는 저금통처럼 생긴 구멍이 있다. 그 구멍으로 동전을 힘껏 던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관우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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