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패·현수막을 만드는 업체다. 그의 명함 뒷면에는 단시조 한 수가 새겨져 있다.
‘눈 감아야 보이는 사람/
어둠 속에 동그란 사람//
달빛 자락 흔들리는 파도 같은 생가지에//
볼 한 번 부비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그 사람’.
‘홍시’라는 제목의 시조다.
첫 시조집 낸 여공 출신 이남순
마흔아홉에 대학 들어가 입문
노동의 체험 우러나는 작품 써
상패 제작과 문학 사이의 아득한 거리. 이씨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필요와 가슴 깊은 곳에
꼬깃꼬깃 쟁여놓은 문학에 대한 아스라한 동경 사이에서 부대끼고 휘둘리며 살아 왔다. 물론 자처한 일이다.
이씨가 최근 출간한 생애 첫 시조집 『민들레 편지』(책만드는집)는 그런 이력을 짐작케 하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작품들 속에 흩어져 있는 편린들을 종합하면 그의 인생 궤적이 어림잡힐 정도다.
우선 이씨의 어린 시절은 ‘풍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납금 내지 못해 변소 청소 도맡’을 정도였다.(‘부라더 미싱’ 중) 덕분에
이씨는 일반고 진학 대신 당시 마산(지금의 창원시)에 있던 한일합섬에 취업해 부설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러니까 그는 여공 출신이다. 마흔아홉에야 대학(명지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대입 시험을 치르는 날 감독관이
‘어머닌 나가주세요’ 다그치자 ‘나도예 수험생이라예’라고 응수하며 자리를 지켰다.(‘등꽃길’ 중) 지금 삶의 터전인
관수동 일대의 풍경을 그린 작품들도 보인다. ‘관수동 낙엽’ ‘관수동 미스 리’ 같은 시조들이다.
이씨는 “내 삶을 받아 적듯, 지난 삶의 보따리를 풀어 놓듯 기록한 시편들”이라고 시조집에 대해 설명했다. “구석진 곳에 노랗게 핀
꽃 한 송이에 가슴이 짠해지고 울컥할 때가 있는 것처럼 낮은 가슴으로 따뜻하게 바라보다 보면 시가 보였다”고 했다.
눈높이를 맞춰 혹은 더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봐 얻어진 공감의 시편들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시조집의 작품들이 찡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첫 머리에 실린 단시조 ‘민들레꽃’은 이씨의 인생과 문학을 건강하게
압축한 작품으로 읽힌다.
‘가난이란 짐수레에 무시로 짓밟히고//
눈물로 징거매던 에움길은 얼마더냐//
그 설움//
기어이 딛고//
오똑 피운 나의 꿈’.
중앙일보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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