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24 03:00
[마감날 문득]
글쓰기 강의를 할 때 문장에 군더더기와 오독(誤讀)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때 드는 예문 하나는 동네 목욕탕에서 발견한 글귀다. "젖은 몸을 말릴 때는 선풍기를 이용해 주세요." 이 문장을 칠판에 쓰고 묻는다.
"목욕탕 주인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수강생들이 금방 알아듣고 정답을 말한다. "헤어 드라이어 좀 작작 쓰세요."
여탕 실태가 어떤지 알아본 바 없으나 남탕에서는 그런 일이 흔히 벌어진다.
여탕 실태가 어떤지 알아본 바 없으나 남탕에서는 그런 일이 흔히 벌어진다.
헤어 드라이어로 헤어가 아닌 곳을 말리는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목욕탕 주인은 소비전력이 냉장고의 60~70배에 달하는 헤어 드라이어를 오랫동안 돌리는 사람들을 보다 못해 그런 글귀를 써붙였을 것이다.
월말에 받아들 전기료 고지서가 신경 쓰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야 하는 입장에서 신경 쓰이는 건 전기료가 아니다.
앞사람 발가락 사이사이와 겨드랑이와 심지어 사타구니까지 왕복한 드라이어를 이어받아 내 머리를 말리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 목욕탕의 문구는 오독(誤讀)의 여지가 있다. 젖은 몸을 선풍기로 말리라고 안내한다면 그 목욕탕에는 수건이 한 장도 없고
그 목욕탕의 문구는 오독(誤讀)의 여지가 있다. 젖은 몸을 선풍기로 말리라고 안내한다면 그 목욕탕에는 수건이 한 장도 없고
선풍기만 20대가량 늘어서 있다는 말인가. 이때부터 수강생들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오독을 피하려면 문구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젖은 몸을 말릴 때는 수건을 이용해 주세요"라는 게 1차 대안이다. 수건은 젖은 몸을 닦는 것이지 말리는 도구가 아니므로
부정확하다.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 외의 다른 곳을 말리지 마세요"라는 대답이 나온다. 서비스 업종에서 "하지 마세요"는 피해야 할
표현이다. "헤어 드라이어 사용을 자제합시다" 같은 잘살아보세 시대 표어도 등장한다. 너무 구식이다.
정답은 "헤어 드라이어는 머리 말릴 때만 사용해 주세요"로 수렴된다. 하고 싶은 말이 압축돼 있어 무슨 소리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오늘 헬스클럽에서 뜨거운 바람에 온 몸을 말리는 자를 또 봤다.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말리는지 마치 제 몸을 북어처럼 말려
오늘 헬스클럽에서 뜨거운 바람에 온 몸을 말리는 자를 또 봤다.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말리는지 마치 제 몸을 북어처럼 말려
제사상에 올릴 것 같은 태세였다. 입이 간질간질했다. "헤어 드라이어는 머리 말릴 때만 사용해 주세요."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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