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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 '둘만 낳자' 캠페인

yellowday 2015. 8. 19. 12:04
 

 입력 : 2015.08.19 10:05


 

한 집에 7~8남매는 보통이었고 많은 집은 12남매까지 있었던 시절,먹고 살기가 꽤나 힘들었고 빠듯한 생활에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저 먹을 것은 다 타고난다는 고정된 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도 무너지기 시작해 1960년대에 이르러 정부 주도하에 가족계획이 실현되었고, 그에 따라 다양한 가족계획 포스터가 발행되었다.


1961년 4월 1일에 (사)대한가족계획협회가 만들어졌다. 협회는 5년간의 사전작업 후 1966년에 '세자녀 갖기 운동'을 시작으로 활발한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추억 속 '둘만 낳자' 캠페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60년대 후반 벌인 출산조절 캠페인 사진 속 “둘만 낳아 잘 길러서 1000불 소득 이룩하자”라는 표어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1965년 299불이었던 국민소득은 1969년에도 815불에 지나지 않았다.


 

 

 

 

1961년 시민들이 가족계획 포스터를 살펴보고 있다.

 

1961년 11월부터 전국 보건소를 동원, 추진된 가족계획사업은 10년후 인구증가율 2%를 목표로 강력하게 추진했다.

 

 

 

 

1960년대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한 산아제한 정책 홍보 포스터. 밑에 피임광고가 인상적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제공

1960년대 인구문제 '출산 붐(베이비붐)과 피난민들로 인한 급격한 인구 증가'

 

'표어' 적게낳아잘기르면 부모좋고 자식좋다/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많이낳아 고생말고 적게낳아 잘키우자

 

 

 

 

 

1970년대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포스터. /안전행정부 제공

1970~80년대 인구문제 '산업화로 인한 도시 인구 증가, 촌락인구 감소'

 

'표어'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기르자/하루 앞선 가족계획 십년 앞선 생활안정(1970) 잘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부럽다/둘도많다/축복속에 자녀하나 사랑으로 튼튼하게/하나씩만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1980)

 

 

 

 

 

1970년대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포스터. /안전행정부 제공

 

 

 

1970년대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포스터./안전행정부 제공

 

 

 

1970년대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포스터. /안전행정부 제공

 

 

 

1980년대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포스터. /안전행정부 제공

 

 

 

1973년‘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포스터. /안전행정부 제공

 

 

 

1990년대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포스터. /안전행정부 제공

1990년대 인구문제 '성비 불균형'

 

'표어'선생님! 착한일하면 여자짝궁 안시켜주나요?/고운 딸하나 백아들안부럽다(남아선호사상)

 

 

 

 

 

1990년대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포스터. /안전행정부 제공

 

 

 

 

 

2005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의 건물 바깥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이다. /조인원 기자

2000년대 인구문제 '저출산과 고령화'

 

'표어'아빠! 혼자는싫어요 엄마! 저도동생을 갖고싶어요/하나보단 둘, 둘보단셋이 행복합니다./하나의 촛불보단 여러개의 촛불이 더밝습니다(저출산 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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