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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마(군함도)를 아시나요? _ 조선인들에겐 눈물의 섬‘

yellowday 2015. 7. 9. 01:22

 

입력 : 2015.07.08 22:36 | 수정 : 2015.07.08 22:39

일본 나가사키(長崎)항에서 18km 떨어진, 남북 480m, 동서 160m의 작은 섬. 군함처럼 생겨서

'군칸지마(군함도, 軍艦島)'라고도 불리는 하시마 섬.일본은 하시마 탄광을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선

일본 근대화를 뒷받침할 탄광'이라며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일제에 의해 하시마 탄광에 강제 동원돼 죽어간 사실은 언급하지 않으려 해 문제가 됐다.


하시마 섬,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
하시마 섬에서 19세기 후반 탄광이 개발됐고, 일제 강점기때 섬 내부에 개발된 ‘하시마탄광’은 지하 1km가 넘는 해저 탄광이었다.
탄광 안은 매우 좁고 온도가 45도를 넘나들었다. 유독가스가 수시로 분출되기도 하며, 작업 도중 해수가 쏟아져 들어오는
혹독한 환경과 노동조건 때문에 일명 '감옥섬'으로 불렸다. 당시 강제 동원된 800여명의 조선인이 철저히 격리된 채 122명이
숨졌다는 기록도 있다.
지리적 여건
하시마 섬은 본래 현재의 3분의 1 정도의 면적밖에 안 되는 작은 여울이었다. 그 작은 여울과 주위의 암초 등을 1897년에서
1931년까지 6회의 매립 공사를 통해 확장한 것이 현재의 하시마 섬이다. 크기는 남북으로 약 480 미터, 동서로 약 160 미터로,
 면적은 약 6.3 헥타르, 해안선의 전체 길이는 약 1200m다.
 

1890년부터 미쓰비시 재벌이 소유하게 됐고, 석탄 채굴을 위해 주위를 매립했다. 이후에는 철근 콘크리트조의

주택도 건설됐다. 1916년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조의 집합주택 '30호동'이 건설됐다.

하시마 탄광에서는 좋은 품질의 ‘강점탄’이 채굴돼 일본 내에서는 근대화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탄광이 전성기를

맞았던 1941년에는 석탄 약 41만 톤을 캐냈다. 탄광 시설, 주택 외에 초중학교, 점포, 병원, 사원, 영화관, 이발소, 미용실,

사교장 등이 있어 섬 안은 완벽한 도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1974년 1월 15일 폐산했는데, 약 2000명까지 줄었던 주민들이

결국 모두 섬을 떠나 무인도가 되었다. 

2001년 다카시마(高島) 주민들이 "황폐화되어가는 지역을 되살리자"며 하시마 탄광 등을 세계문화유산에 올리자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2006년 전문가 그룹이 결성됐고, 2009년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이 산업시설들을 올렸다. 

 

일본, 강제징용 역사 외면한 채 세계유산 등재 추진
일본 정부는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일본 남부 규슈(九州) 일대에 건설된 탄광·항만·제철소 등 23곳을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이라 이름 붙였다. 조선인과 중국인들은 하시마섬의 땅 속 1000m까지 파고 들어가 하루 12시간씩 강제 노역을 했다.
오죽했으면 이 섬을 '지옥도'라고 부를 정도였다. 참고로 서울 여의도에 있는 63빌딩 높이가 250m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하시마 섬 등 스물세 곳의 유적이 모두 1910년 이전에 건설됐기 때문에 일본의 산업혁명 성과를 보여준다고
홍보하며 식민지배나 침략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해왔다. 
 

 

그들은 일본 역사의 성취를 보여주기 위해 애쓸 뿐, 그 성취가 타국의 고통으로 이어진 다음 장(章)에 대해선 철저히 눈을 감았다. 심지어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 측이 강제징용 피해지가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자 "정치적 주장을 가지고 들어올 일이 아니다"라며 한국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일본이 하시마 섬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한다는 사실이 한국에는 2012년에야 알려졌다. 국무총리실 산하 민간위원회가 반대 입장을 밝히고 강제징용 사료를 공개했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사이 일본은 3000쪽이 넘는 방대한 보고서를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 제출했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지난 2014년 10월 실사를 거쳐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적합 판정을 내렸다.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인 하시마 섬은 이달 초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일본, 국제무대서 日帝 강제노역 동원 첫 인정
일본은 이달 초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 등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 회의에서 "일부 시설에 수많은 한국인이 자기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을 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사실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은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하면서 "해당 시설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안내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일본의 발표 내용은 메이지 산업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결정문에 주석(註釋) 형식으로 포함됐다. 위원회는 또 2017년까지 일본이 해당 시설에 이 같은 조치를 한 뒤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으며, 2018년 회의에서 그 이행 상황을 검토하기로 했다.
‘메이지 유산’은 규슈와 야마구치 지역 8개 현 11개 시에 있는 23개 시설이다. 이 중 하시마 탄광 등 7곳에는 공식 기록상으로 5만79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고, 그 가운데 94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