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남' 아닌 '내' 이야기… 중년 부부 행복지침서

yellowday 2015. 7. 4. 17:26

입력 : 2015.07.03 23:15

[인간관계]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별별다방으로 오세요|홍여사 지음|북클라우드|320쪽|1만3800원

심리학 박사도 전문 상담가도 아닌 '홍여사'가 처음엔 못 미더웠다. 위기의 부부, 황혼 이혼, 고부 갈등 같은 문제를 해결해준다 하니 더더욱 시큰둥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달랐다. 조선일보 연재 첫 회부터 중장년층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하고 두 눈 휘둥그레 뜰 만큼 해괴한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40~50대 남녀라면 누구나 한 번 겪었을 '관계'의 고민들이 별별다방 식탁에 올랐다. 곱게만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 '마흔 넘은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며 허구한 날 타박하는 남편, 성욕을 잃은 아내로 좌절하는 남편, 은퇴한 뒤 찬밥 신세가 된 가장 등 저마다 다른 무늬, 그러나 본질은 같은 문제들을 한 상 차려놓고 다방 안주인과 손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조근조근 해법을 찾아갔다.

1년 넘게 이곳에서 오간 수많은 사연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오니 별별다방의 매력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역시, 이 다방에 단골이 들끓는 이유는 홍여사 덕분이었다. 미모가 아니라, 그녀의 '커다란 귀' 말이다. 경청이 얼마나 큰 위로의 힘을 갖는지 홍여사는 보여준다. 해법이 있을까 싶은 복잡한 사연도 그녀는 대범하고도 섬세하게 경청했다가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시한다. 목석 같은 남편을 잠자리로 이끌기 위해 자존심 구겨가며 온갖 노력 기울이는 아내에게 홍여사는 말한다.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밝히는 여자라는 소리를 면할까요.' 저는 님의 그 문장이 그냥 넘어가지질 않습니다. 저는 님이 마음속에 뿌리 깊이 박힌 보수적인 성 의식에 짓눌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의 엇박자가 님을 갈팡질팡하게 하는 거죠. 몸과 마음의 합일을 위해 남편을 길들이고 자신을 가꾸는 님은 가장 사랑스러운 아내일 뿐입니다."
갈수록 사나워지는 아내에게서 벗어나 우아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보고 싶은 남편에게는 따끔한 충고를 던진다. "매력 넘친다는 그 여인과 사는 남자는 그 여인에 대해 아무런 환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아내를 들여다보세요. 눈길이 오래 머문 자리엔 반드시 아름다움이 피어납니다."

별별다방의 주역은 또 있다. 인생 선배로 달아주는 진솔한 댓글들, 생면부지의 '손님들' 말이다. 편견이 없으니 오히려 냉철한 해법을 준다. 스크루지 저리 가라로 지독한 구두쇠 남편 탓에 속이 새까맣게 탄 아내에게 손님들은 귀띔한다. "남편의 지나친 근검절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아옹다옹 같이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대화로 사랑으로 서서히 남편의 마음을 녹이세요. 젊은 것들 말마따나 이 좋은 세상, 우리도 맞춰가며 살아야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난 지금 행복한가'란 회의에 한없이 우울해진다면 이 책이 위안이 될 것이다.

 커피 한잔 들고 혼자 음미하기 딱 좋은 책이다. 문학적 감수성 충만한 홍여사의 글맛도 빼어나다. '부부는 작은 구명보트를 타고 함께 태평양을 건너는 두 명의 조난자' '신뢰가 부부를 묶는 탄탄한 밧줄이라면, 연민은 두 사람이 얽혀든 거미줄 혹은 실타래 같은 것' 같은 문장들은 그 자체로 관계의 명답(名答)이다.  w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