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캔버스 가득 수놓은 봄꽃, 그것은 반 고흐의 마지막 투혼이었다

yellowday 2015. 3. 23. 17:17

입력 : 2015.03.21 03:00 / 수정 : 2015.03.21 04:17


	반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 사진
반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

화사한 봄꽃들이 캔버스 가득 피어났다. 흰색과 분홍, 초록 물감으로 두껍게 덧발라진 꽃과 이파리들이 마치 환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인다. 이 꽃나무 그림들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피워 올린 마지막 생명의 불꽃이기도 했다.

1888년 2월 19일, 반 고흐는 2년에 걸친 파리 생활을 접고 남쪽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인상파 화가들의 최신 경향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파리였지만, 워낙 극단적인 그의 성격을 받아들여 주는 화가들은 거의 없었다. 주변의 몰이해에 지치고 낙담한 화가는

가방 하나만을 든 채 무작정 파리를 떠났다. 하루를 꼬박 기차에서 보내고 이튿날 그가 내린 곳은 지중해가 멀지 않은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 아를이었다.




 


	반 고흐의 1888년작 ‘과수원의 꽃피는 살구나무’ 사진
반 고흐의 1888년작 ‘과수원의 꽃피는 살구나무’.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반 고흐가 처음 아를에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마을은 차가운 겨울 대기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3월이 되어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자 과수원의 꽃나무들이 마법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반 고흐는 새로운 의욕과 희망에 부풀어서 꽃나무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3월 24일과 4월 21일 사이 그가 완성한 꽃나무 그림만 열네 점에 이른다. 그는 별안간 약동하며 피어나는 온갖 색채의 향연에서 생명의 환희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분출하는 생명력을 힘찬 터치로 캔버스에 옮기며 새삼 살아 있다는 기쁨에 충만했으리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눈부신 생명력을 뽐내던 과수원의 꽃들은 한 달이 채 가지 못해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삶의 기쁨에 넘치던 화가의 생명 역시 이로부터 2년 후에 덧없이 사그라들어 버렸다. 봄날에 핀 꽃이 금세 시드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우리들 생명이 스러지는 순간이 언제가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삶은 더욱 엄숙하고, 더욱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w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