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혼자 하는 숨바꼭질 / 김현정의 그림 라디오

yellowday 2015. 3. 18. 07:56

입력 : 2015.03.13 11:19


	내숭: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2014) Feign: The Roses of Sharon has Blossomed.
내숭: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2014) Feign: The Roses of Sharon has Blossomed.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 이 놀이를 하지 않은 지 꽤 오래 됐지만 무의식중에 반응하는

내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마침 약속시간에 조금 일찍 도착해 잠시 넋을 놓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쌀쌀한 공기 속에서, 새어 나오는 입김마저 꾹 참고 술래가 다음 구호를 외칠 때까지 킥킥대며 멈춰 있는 모습이

마냥 즐거워보인다. 점점 술래 쪽으로 좁혀 들어오는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눈빛에서 묘한 긴장감마저 든다.

마치 세상을 구할 기세로 술래의 등을 치고 달아나는 패기 또한 당차다.

그들의 순수함에 눈이 꽂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활동적인 놀이엔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을 질끈 위로 묶은 볼 빨간 어린아이. 무릎은 훍투성이가 된 지 오래지만 전혀 신경 쓰이진 않는다.

제일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술래라는 외침과 동시에 까르르 뛰어가던 해맑던 아이는 그렇게 한참을 놀다 꼬르륵 소리와 함께

꽁지머리를 휘날리며 친구들과 학교 앞 문구점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친구와 몇백 원만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불량식품을 고르던 그날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나의 가장 순수했던 그날과 함께 지금까지 지내왔던 나의 여러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는

어느덧 나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래의 등을 칠 때처럼 당당하게 목표를 이뤄 냈던 기억들이 어릴 적

해왔던 저 놀이와 겹쳐 있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해맑게 웃던 볼 빨간 아이는 어느새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아닌 듯 가만히 있기도 하고, 슬픈 마음에 눈물이 나더라도 누군가 뒤돌아 볼 때면 표정을 숨기곤 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이 놀이를 바라보다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릴 적 또래 아이들과 까르르 웃으며 뛰놀던 놀이터는 어느새 사라지고 몸만 훌쩍 커버린 나는 아직도 혼자 숨바꼭질을 한다.
켜켜이 쌓여버린 묵은 감정들을 뒤로하고 혼자 속으로 외쳐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