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과 그 안을 채우는 물건 혹은 사람에만 열중했던 것 같다. 프랑스 파리의 프렝탕백화점 옥상. 물건 사는 데만 급급했지 위의 공간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구름을 머리에 이고 바라보는 파리는 그간 한쪽만 향했던 좁은 시각을 넓게 터준다. 파리는 현재 ‘파리의 지붕’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안을 두고 갑론을박 중이다.
파리(Paris)다.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고고함에 대한 감탄사는 잠시. 가끔은 자만하는 듯 때로는 퉁명스러움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코를 찌르는 오줌 냄새가 몸에 밸 것 같은 지하철에서 그랬고, 뼛속까지 요상하게 스며드는 스산한 바람은 흩날리는 쓰레기의 '쉬익~' 소리와 함께 무언가 을씨년스럽다. 중세 여인들의 풍성한 치마 속에 감춰진 음습한 비밀처럼 사치와 향락은 오래된 건물 속에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세상 평온한 것 같지만 어느새 싸늘해진다. 사탕을 굴리는 듯한 부드러운 말투는 무장 경찰들의 굳은 표정에 잊힌다. 매장 입구, 가방 검사를 당하는데 먼저 지퍼를 열게 된다. 변하지 않는 듯한 도시는 무언가 정지된 필름 같다. '트렌드 1번지'는 독일 베를린과 영국 런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에 내어준 듯 보인다.
그런데 참. 중력의 중심이라도 끌어다 놓은 걸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지만 어느새 뺏겨버린 마음. 프랑스 파리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연발하게 되는 도시가 또 있을까. 시선에 대한 자유를 이야기하자니 이곳만 특징은 아닐 것이다. 이 땅을 뜨는 순간부터 생겨나는 것일 테니까. 불황은 도도한 이곳도 변하게 한다. 택시를 탔다. "뭐하러 왔느냐"는 말에 "비즈니스"라 답해봤더니, 웬걸. "감사합니다"라는 답변이 온다. 영어를 하는 이도 훨씬 늘었다. 눈이 기쁠 줄 알았는데 코가 먼저 반응한다. 혀의 돌기를 자극하는 푸줏간과 치즈 가게의 알싸한 내음, 낡은 책방의 쿰쿰한 냄새…. 빵 굽는 내와 어울려 허기를 자극한다. 파리는 향수다. 배낭여행이든 신혼여행이든 그때 그 시절 똑같이 자리를 지키는 도시의 모습에서 鄕愁를 엿본다. 반가움이 먼저. 정지된 듯한 시간 속에도 변화라는 우주는 있다. 도시 구석구석을 누리는 享受를, 또 사람 내음과 어울리는 香水가 기억 속에 맴돈다.
향이 이끄는 곳으로 향한다. 현지인에게 '어디가 좋으냐' 물으니 11구에 있는 '르 페르슈아'를 가보라 한다. 요즘 파리에서 가장 뜨는 공간 중 하나가 '옥상'이란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신비하다. 번지수 외에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빌딩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은밀히' 당도하는 곳. 멀리 몽마르트르까지 보이는 뷰가 환상적이다. 대체로 7~8층의 건물이어서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다. 구름이 닿을 듯하다. 이 공간에선 자유와 박애가 생기지 않을 수 없겠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준 파리의 지붕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최신 뉴스가 들린다.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파리의 미식 문화'처럼 파리라는 도시 자체를 지키자는 것이다. 시선을 다시 잡는다. 대상에 탐닉하는 것에만 집착했는데 그 자체가 족쇄가 됐나 보다. 에펠탑과 개선문 꼭대기에 올랐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희뿌연 석회질의 건물은 유화 속 한 장면으로 서로를 인도한다. 사람도 그렇다. 가까이서만 봐선 그 속에 갇혀선 그를 온전히 알 수가 없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