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3.27 16:07 | 수정 : 2015.03.27 16:36
<블로그여행기>
아마 캄보디아 하면 누구나 그렇듯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억은 씨엠립의 앙코르와트 일 것이다.
앙코르와트가 찬란했던 캄보디아의 고대사를 보여주는 증거이자 자존심이라 할 만큼 국기에도 그려진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반면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감추고 싶은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앙코르와트가 캄보디아 빛의 역사라면 이 킬링필드는 어둠의 역사다. 20세기 최악의 사건으로 1975-1979년 내전 중 같은 민족에
의해 캄보디아 인구의 1/4이 어떤 이유도 없이 학살을 당한 사건이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200-300만 정도의 희생이 있었다고 한다.
캄보디아 곳곳에 이 아픈 기억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1시간쯤 달리면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위령탑이 세워진 킬링필드가 있으며 프놈펜의 수도에 당시 고문이 가해졌던 고문박물관이 남아있다.
우선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킬링필드로 가보자. (참고로 흔히들 학살장소를 킬링필드라고 부르지만, 프놈펜에서 학살이 있었던
곳의 정확한 명칭은 '청아익 대량 학살센터'로 불리며 '킬링필드'라 불리는 장소는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800여곳이 된다.
▲ 프놈펜에서 킬링필드로 가는 길에 보면 캄보디아의 수도답게 이곳은 교통체증도 있고 캄보디아의 다른 도시보다 좀 더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다.
1. 청아익 대량 학살센터, 킬링필드
1시간여 달려 도착한 프놈펜 외곽의 킬링필드. 한국어 안내서도 있으며 입장료는 오디오 가이드를 포함한 6$로
넉넉잡아 2시간 정도면 그 아픈 역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멀리 17층 높이의 위령탑이 보이고 마치 작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는데 위령탑을 중심으로 팻말에
있는 번호를 따라 돌면서 오디오 가이드의 번호를 눌러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게 된다.
참고로 이곳을 방문할 때 꼭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자. 당시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역사적 사실, 그리고
지금은 작은 공원 같은 느낌의 이곳에서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아주 끔찍한 일이 있었음을 설명해준다.
당시에 있었던 건물은 없지만, 그 자리에 저렇게 팻말을 세워 캄보디아 내전 당시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보여준다.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들으면 되는데 당시에 이곳에서 사람으로서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일이 많은 일이 벌어졌다.
▲ 이곳에서 발견된 유골
위령탑을 중심으로 유골이 발견된 구덩이들 그리고 당시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그리고 이곳은
우기와 건기를 반복하며 흙이 내려가면 유골이 계속 나오고 있다.
희생된 사람은 어른들뿐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있었다. 특히 아이들을 때려죽였던 나무라고 불리는 '칠드런 트리'밑에
여행자들의 팔찌가 많이 걸려 있다. 어른들의 전쟁에 희생된 아이들 이곳에 온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안타까워했던 장소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이 공간 침묵만이 흐른다. 과연 저들은 무슨 생각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지만 우리도
이 킬링필드를 공감할 역사의 흔적을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반세기가 조금 더 지난 역사에 대한민국도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눴고 여전히 휴전 중인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6.25를 겪고 있지 않은가.
▲ 17층으로 쌓여진 이곳에서 발견된 유골들
'청아익 학살센터'의 위령탑에는 유골이 보관되어 있는데 17층의 높이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있었다는데 중간중간
작은 두개골도 보인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이 유골들은 그들이 여기서 어떤 방법으로 희생되었는지 그 흔적이 보인다.
'청아익 학살센터'의 오디오 가이드가 워낙 잘 되어 있어 우리가 영화나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역사 책에서 나 보던
그 이야기와 귀와 눈으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2. 투슬렝 고문박물관
밖으로 나와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 듯 조용하게 새가 지저귀고 나무에는 꽃이 피고 있다. 청아익 학살센터를 나와 다시
프놈펜 시내로 들어와 투슬랭 고문박물관으로 가자. 다시 프놈펜 시내로 들어와 차로 시내 중심부으로 들어와 20분쯤 달리면
투슬렝 고문박물관으로 왔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느낌이 든다. 고문박물관 이라니…. 투슬렝 고문박물관은 원래 여학교였던 장소를 크메르루즈군이
사람들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감옥으로 개조한 장소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학교 건물을 개조해 사람들을 감금하고 잡아와 고문했던 장소로 여기서도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당시 이유 없이
이곳에 끌려와 고문 당하고 희생된 사람이 많다. 희생자들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는데 웃으며 찍은 사진도 보인다. 그 사람은
아마 자신은 죄가 없기 때문에 곧 풀려날 거라 생각하고 기념촬영하듯 웃으며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끌려와 살아서
나간 사람은 없다. 그리고 어이없지만 손이 깨끗하다는 이유로도 잡혀온 사람도 있으며 모두 여기서 고문을 받다가
크메르루즈군이 퇴각할 당시 모두 학살된다.
투슬렝 고문박물관은 3개의 건물로 되어 있으며 건물 내부가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으며 당시 희생되었던 희생자들의
사진과 함께 킬링필드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분향소
청아익 학살센터에서 만났던 서양인 배낭여행객들을 다시 또 여기서 만나기도 했는데 보통 햇빛을 피할 곳이 많지 않은
킬링필드 위령탑이 있는 청아익 학살센터를 오전 해가 뜨거워지기 전 방문하고 건물 안을 돌아보며 캄보디아의
현대사를 볼 수 있는 이곳은 햇빛을 피할 수 있어 한낮에 많이들 오게 된다. 그리고 청아익 학살센터나
투슬렝 고문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표지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웃지말아 달라는 부탁의 팻말이 있다.
킬링필드는 20세기 최악의 학살사건으로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일을 한 사건으로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러니까 이런 기억이 있다.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기억 어떤 기억은 유령처럼 지워지지 않고 계속 따라온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킬링필드가 그런 기억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 희생된 사람 모두 가해자이며
피해자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아픈 상처이자 어쩌면 감추고 싶은 기억이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에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고 이렇게 보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불과 반세기가 조금 더 지난 시간에 같은 민족끼리 그런 아픔을 겪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한 가끔은 우리가
휴전 중인 국가임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이곳에서 다시 기억나게 한다. 프놈펜을 여행한다면 한 번은 꼭 봐야 할 곳이지만
여느 관광지와는 다른 장소라 조금은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보고 위로를 해주자. w조닷
'世界의 觀光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몽환적인 운무의 바다…' 안휘성 황산의 풍경 (0) | 2015.04.15 |
---|---|
암스테르담의 매력에 빠지다 (0) | 2015.04.11 |
삼국지 주인공 '조조'의 본거지, 흔적 고스란히 남은 이곳은? - 삼국지의 흔적이 담긴 고도, 쉬창(허창) (0) | 2015.03.21 |
파리는 향수(鄕愁·享受·香水)다 (0) | 2015.02.27 |
칭다오 속 작은 유럽 (0) | 2015.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