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당선소감/심사평] 내 눈 속의 붉은 마녀

입력 : 2015.01.01 03:00

 

거울을 바라보네 내 눈 속 머리카락
어제보다 자라났네 검붉게 물들었네
오늘은 자소설＊쓰네 이틀밤을 새우며

입안 가득 종이 넣고 꼭꼭 눌러 씹었네
갈등극복 영웅기 이왕이면 대서사시
사실은 나트륨이던 조미료 인생사여

2002 빨간색 풍선은 부풀었네
2014 수능은 수리가 중요했네
엄마는 내 그림자를 돌돌 마네 베어 무네

특기는 돌진하며 들이받기 잘합니다
취미는 빵처럼 잘 부풀어 오릅니다
한 움큼 하룻밤 마다 자라난 혓바닥들

영웅이 되리라 눈 속의 붉은 실을
눈 밖으로 꺼내 붉은 카펫 짜리라
그 위에 궁전을 짓고 붉은 마녀 되리라

＊자소설이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과장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취업 준비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일컫는 말이다

[시조 당선 소감]

外祖父 길 따라… 전통, 오늘의 새로움으로 만들 것

서상희

8년 전,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고교 시절 쓴 시조를 신춘문예에 투고했는데 심사위원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다. "재능이 엿보인다"는 응원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왜 시조인가, 묻는다면 "전통을 사랑하기 때문"이라 답하고 싶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국궁(國弓)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국궁과 시창(詩唱)을 즐기셨다던 외할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는 중인가 봅니다. 전통을 오늘의 새로움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누구보다 제 글을 사랑하는 든든한 아버지 덕분에 행복하게 글을 써 올 수 있었습니다. 나의 어머니, 동생 그리고 챠이. 사랑합니다.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덕분입니다. 시의 세계를 열어주신 이승하 선생님, 방현석 선생님, 전영태 선생님, 그리고 세상을 보는 법을 알려주신 박철화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중앙대 홍보실과 홍보대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정수자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선일보와 인연이 깊습니다. 2011년 인턴기자로 조선일보에서 일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람을 향한 글을 써야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당선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먹먹함과 기쁨을 안고, 정진하겠습니다. 당선 시조는 저와 닮은, 오늘날의 '취준생'들에게 바칩니다.

▲1989년 서울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수료

[시조 심사평]

'조미료 인생사'로 청춘 비유… 풍자적 진술 압권

정수자·시조 시인

새 문을 여는 데는 새로움이 제일 센 힘이다. 시조라는 오랜 양식의 매력을 아무리 잘 살려도 새로움을 더하지 못하면 오늘의 문학으로 빛나기 어렵다. 44%나 늘어난 응모 덕에 즐거운 긴장으로 심사하면서도 새로움을 앞에 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당선작 ‘내 눈 속의 붉은 마녀’는 독특한 발상을 풀어가는 풍자적 진술이 압권이다. ‘자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청춘들에서 ‘사실은 나트륨이던 조미료 인생사’임을 추려내고 그것을 다시 ‘엄마’의 교육열에 엮는 솜씨가 빼어나다.

특기로 무장한 청춘들이 그런 조종(?)의 결과임을 암시하며 그럼에도 자신만의 ‘붉은 카펫’짜낼 패기를 펼치는 것이나, 충혈된 눈의 ‘붉은’이미지를 ‘붉은 마녀’라는 대찬 여성으로 탄생시키는 등 참신성도 각별하다.

긴 호흡과 율격의 활달한 운용은 여러 편에서 확인되는 서상희씨의 개성과 역량인데, 정형의 밀도는 앞으로 고민할 대목이다.

끝까지 들고 있던 것은 용창선·김태경·조혁선·나영순·허윤씨 등의 작품이었다. 용창선씨는 ‘께냐’의 단아한 미적 구조화에 비해 다른 작품들이 처졌고, 김태경씨는 참신성이나 심도 면에서 달렸으며, 조혁선씨는 소재의 상투성이, 나영순씨는 작품의 편차가, 허윤씨는 압축의 미흡이 걸렸다.

일정 수준에는 올랐으나 자신만의 ‘칼’이 조금씩 부족한 데다 ‘큰 칼’같은 서상희씨의 등장으로 모두 내려놓으며 다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서상희씨 당선을 축하하며, ‘붉은 마녀’의 높푸른 비약을 기대한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