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은 『동의보감』 이외에도 많은 의방서 등을 증보 개편하거나, 또는 알기 쉽게 한글로써 해석, 출판하였다.
1601년 세조 때에 편찬한 『구급방(救急方)』을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으로 주해하였으며, 임원준(任元濬)의 『
창진집(瘡疹集)』을 『두창집요(痘瘡集要)』로 그 이름을 바꾸어 언해, 간행하였다.
동의보감촌으로 들어 가는 입구입니다.
불로장생의 문입니다. 여길 들어갔다 나오면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믿거나말거나요.
거대한 동의보감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군요.
현재의 의사와 간호사입니다.
산청 전통의약 엑스포를 알리는 전시관
인간의 수명도 거북이를 닮아 장수하라는 뜻으로...
아님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 갈려고 올라 왔는지..ㅎㅎ.
12지신상이 사방팔방을 지키고 있네요.
이 곰은 웅담을 빨아 먹는 몹쓸 인간들을 벌주려고 포효하고 있지요
신의정은 류의태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 장금이가 물을 긷고 있네요.
허준의 초상.
1546(명종 1)∼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의관.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 김포 출신. 할아버지 허곤(許琨)은 무과 출신으로
경상도우수사(慶尙道右水使)를 지냈고, 아버지 허윤(許碖)도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지냈다.
익히 알고 있는 장면 -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구요
약제사들이 약을 조제하고 있는 모습이네요. 천정엔 마른 한약재들이 봉지에 담겨 매달려 있습니다.
허준의 스승이신 류의태 선생의 상입니다.
허준은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허준은 선조의 피난지인 의주까지 호종(扈從: 왕의 가마를 수행함)하여 왕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모셔 호종공신(扈從功臣)이 되었으며, 그 뒤에도 어의로서 내의원에 계속 출사하여
의료의 모든 행정에 참여하면서 왕의 건강을 돌보았다.
그러던 중 1596년에 선조의 명을 받들어 유의(儒醫) 정작(鄭碏),태의 양예수·김응탁(金應鐸)·이명원(李命源)·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내의원에 편집국을 설치하고 『동의보감』을 편집하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해에 다시 정유재란을 만나 의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편집의 일은 중단되었다.
그 뒤 선조는 다시 허준에게 명하여 단독으로 의서 편집의 일을 맡기고 내장방서(內藏方書) 500권을 내어 고증하게 하였는데,
허준은 어의로서 내의원에서 의무에 종사하면서 조금도 쉬지 않고 편집의 일에 전심하여 10여년 만인 1610년(광해군 2)에
완성을 보게 되었는데, 25권 25책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발췌
'yellow글 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녁노을이 질 때 14'9/14 yellowday (0) | 2014.11.19 |
---|---|
미시시피 붉은귀거북의 일광욕 14'10/12 yellowday (0) | 2014.11.14 |
청도 운문사! 그 고즈넉함에 끌리다. 14'10/22 yellowday (0) | 2014.11.06 |
바다 (맹골수로) / yellowday (0) | 2014.11.02 |
승학산 오르는 산길에서 만난 야생꽃들입니다. 14'10/12 yellowday (0) | 2014.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