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18 03:01
古堂 조만식 선생 64주기
일제강점기 교육을 통해 민족혼을 불러일으키고 물산장려운동을 벌인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1883~1950) 선생의
64주기 추모식이 17일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열렸다.
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 자리에는 방우영 이사장을 비롯해 김유길 광복회 부회장,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조연흥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광복회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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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 조만식 선생 순국 64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인사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방우영 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김유길 광복회 부회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관선 산정현교회 목사, 오현정 시인. /이덕훈 기자
방우영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고당 선생은 비폭력·불복종 정신으로 일제에 항거하고 지역감정 타파에 앞장섰으며,
북한 공산 정권에 저항하다가 순국하신 분"이라며 "오늘날 우리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만끽할 수 있는 것도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추모 강연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는가?'에서 "고당 선생이 살아 계셨다면 '3·1운동의 정신을 온전하게
계승하고 있는가'라고 물으실 것"이라며 "조국의 미래를 위해 나보다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무한한 책임감을 가졌던 선각자들의
정신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평남 강서에서 태어난 조만식 선생은 오산학교 교사와 교장을 지내며 인재를 기르고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 평양 2차
독립만세운동 조직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10개월 옥고를 치렀다. 물산장려운동과 신간회 운동을 이끌었고 조선일보 사장을 지내며
민족 언론 창달에도 이바지했다. 광복 후에는 평양에 남아 신탁 통치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공산 정권에 의해 연금됐다.
6·25전쟁 중인 1950년 10월 퇴각하던 인민군의 무력에 순국했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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