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6.19 03:02
갈물 이철경 선생 탄생 100주년展… 오늘부터 서울 관훈동 백악미술관
'중학교 1학년 때 건넌방에서 골똘히 편지 쓰시는 어머님을 봤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시고 왼손에 두루마리를 감은 벼루집 뚜껑을 드시고 오른손으로 세필을 높이 들어 흘려 내리시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황홀하게 느껴졌다.'(1979년 6월 '주간여성'에 실린 이철경의 글)
갈물 이철경(1914~1989) 전 금란여고 교장은 '언문(諺文)'이라 불리던 우리말 한글을 서예(書藝)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우리말로 책 읽고 글 쓰기가 고달픈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75세로 작고할 때까지 교육자·서예가로 살며 한글 서체 '갈물체'를 만들고 알리는 데 힘썼다. '궁체'를 갈고 다듬어 한글화한 갈물체는 단아함이 특징이다. '갈물'은 그의 부친 이만규씨가 지어준 아호로 '가을물'이란 뜻이다. 남편은 서울고 교장을 지낸 서정권씨, 가수 겸 방송인 서유석씨가 갈물의 둘째 아들이다.
갈물 이철경(1914~1989) 전 금란여고 교장은 '언문(諺文)'이라 불리던 우리말 한글을 서예(書藝)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우리말로 책 읽고 글 쓰기가 고달픈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75세로 작고할 때까지 교육자·서예가로 살며 한글 서체 '갈물체'를 만들고 알리는 데 힘썼다. '궁체'를 갈고 다듬어 한글화한 갈물체는 단아함이 특징이다. '갈물'은 그의 부친 이만규씨가 지어준 아호로 '가을물'이란 뜻이다. 남편은 서울고 교장을 지낸 서정권씨, 가수 겸 방송인 서유석씨가 갈물의 둘째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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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물 이철경 선생의 생전 모습. 오른쪽은 1989년 강태영 시인의 시 ‘목단’을 옮겨 쓴 작품. /갈물한글서회 제공
선생의 작품은 여동생 꽃들 이미경(96) 선생 것과 함께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소장됐고, 1994년 서울시가 정도(定都) 600년 기념 사업으로 남산골에 묻은 타임캡슐에도 '갈물한글서회 서예집'이 들어갔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전시를 주관하는 신명숙 갈물한글서회 회장은 "처음 뵈었을 때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늘 깨어있어라'며 당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흰 종이에 글씨를 단정히 쓰는 게 서예의 전부였는데, 선생님은 다양한 색깔 종이에 정자와 흘림체를 섞어가며 변화를 주셨어요."
선생은 네 살 되던 해 여름 부친에게서 신문지에 숫자 '一, 二, 三, 四'를 써 가며 붓글씨를 배웠다. 이듬해 '천자문'을 뗐다. 열네 살 때 남궁억 선생이 지은 '한글 글씨체첩'을 보고 우리말 글씨에 관심을 가졌다. 열아홉 살 때 '궁체 쓰는 법' 상권을 출간했으나 닷새 만에 일본 경찰에 압수됐고 종로서에 불려가 시달렸다. 광복 후에야 한글 서예의 기초로 궁체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1946년 '초등글씨본'과 '중등글씨본' 각 3권씩을 냈고, 1958년 갈물한글서회를 창설해 수많은 서예인을 배출했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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