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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의 한 끼 식사가 100여 가지 요리? 직접 보니…'헉' - 中 궁중요리 '만한전석'의 진수, 팡산

yellowday 2014. 10. 14. 04:16

입력 : 2014.10.13 10:03

 

예로부터 음식 문화가 발달한 중국은 지역은 물론이고 계급에 따라 먹는 음식에 차이가 있었다. 그만큼 어떤 요리를 먹느냐는

신분에 대한 일종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서민들은 황족만 먹을 수 있는 궁중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봉건시대까지

궁중음식은 철통같은 보안으로 철저히 베일에 싸인 요리였다.

중국 전통의 원형식탁에 놓인 궁중요리.

중국 전통의 원형식탁에 놓인 궁중요리.

 

황제의 권력이 막강했던 중국은 궁중음식도 일찍 발달해 청나라 때 최고 전성기를 누렸는데, 또한 요리법이 역대 가장 복잡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청나라의 건국 과정과 연관이 있다.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하게 된 청나라는 만주지역 전통요리의 특징을 띄고 있는

반면 명나라 궁중요리는 한족 전통요리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융합해 청나라 궁중음식이 만들어졌는데, 초기에는 짠맛이 강한 북방요리의 특징이 강했으나 건륭(乾隆)황제 이후에

담백하고 단맛이 강한 남방요리의 특징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궁중요리에 관심이 많던 건륭황제(좌)와 100여가지 요리를 고집한 서태후(우).

궁중요리에 관심이 많던 건륭황제(좌)와 100여가지 요리를 고집한 서태후(우).

 

또한 청나라 궁중요리의 종류는 과거 어느 나라와도 비교가 안 된다. 건륭황제는 한 끼 당 100여개의 요리를 먹었고,

심지어 요리의 등급을 나누어 재료와 조리법을 기록해 국조궁사(国朝宫史)라는 책을 만들 정도였다.

물론 청 후기에는 경제가 어려워져 요리 항목이 줄었지만 유독 서태후만이 100여개의 산해진미를 먹었다고 한다.

청 멸망한 후에는 궁중요리사가 생계를 위해 궁 밖으로 나와 식당을 차렸는데 이 식당이 '팡산(仿膳)'이다. 팡산은

 '모방한 음식'이란 뜻으로 궁중요리를 모방한 식당이라는 의미이다.

팡산은 과거 중국정부가 국빈을 초대할 때만 많이 이용한 식당이었으나 최근에 들어 일반 시민도 저렴한 가격에

궁중요리를 맛볼 수 있는 메뉴를 출시하고 있다.

천안문 광장대로 국가박물관 옆에 위치한 팡산 식당의 외관.

천안문 광장대로 국가박물관 옆에 위치한 팡산 식당의 외관.

 

팡산은 베이징 베이하이공원(北海公园)안에 있는 것이 본점이고, 천안문광장에 지점을 두고 있다.

특히 본점은 청나라 건륭황제가 신하들을 초대해 연회를 열었던 이란탕(漪澜堂)에서 영업하기 때문에 마치 과거로 돌아가 식사를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전채부터 주 요리, 후식까지 순차적으로 나오는 팡산의 궁중요리.

전채부터 주 요리, 후식까지 순차적으로 나오는 팡산의 궁중요리.

 

팡산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바로 중국 모든 요리를 집대성한 만한전석(满汉全席)이다. 만한전석은 중국 만족과 한족요리의

장점을 흡수해서 만든 요리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역사상 제일 유명한 중화대연(中華大宴)으로 진귀한 요리가 다 모인 최대의 호사함과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이루는 대연회식이다.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황금용상(좌)과 팡산 본점의 입구(우측 상단) 그리고 팡산의 만한전석(우측 하단).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황금용상(좌)과 팡산 본점의 입구(우측 상단) 그리고 팡산의 만한전석(우측 하단).

 

물론 현재 팡산에서 당시의 궁중요리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어렵지만 그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궁중요리라고 해서 비싸다고 생각수 있는데, 팡산은 베이징에서 일반음식점 가격과 큰 차이가 없이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주소: 北京市 西城区 文津街1号北海公园东门内
입장료: 010)6404-2573/6401 1889
사이트: http://www.fangshanfanzhuang.com.cn
상세정보 URL: http://visitbeijing.or.kr/detail.php?number=146

각종 신기한 재료가 들어간 만한전석.

각종 신기한 재료가 들어간 만한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