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사랑도 욕망도 한순간… 그래도 나는 그 찰나를 위해 산다

yellowday 2014. 9. 20. 11:17

입력 : 2014.09.20 03:02

소설 '불륜'―제네바

알랭 드 보통이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 스위스에 대해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가장 이국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모든 것이

찬란하게 따분하다는 점이었다. 아무도 무차별 사격으로 죽지 않았다. 거리는 고요했다. 어디나 깔끔했다. 흔히 말하듯이,

전체적으로 아주 깨끗해서 점심으로 보도블록을 깨서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파울루 코엘류의 장편 소설 '불륜'의 주인공 린다는 스위스 제네바에 대해 맥락이 비슷한 얘기를 한다. "취향이 멋지다고 애써

말하지 않는 도시. 유리와 철로 된 거대한 고층건물이 없고, 고속도로가 많지 않은 도시. 나무뿌리들이 인도의 콘크리트를 뚫고

나와 행인의 발을 걸고, 공원의 신비스러운 작은 나무 울타리 주변으로 '자연은 원래 그런 법'이라며 방치해둔 잡초가 무성하게

웃자라 있는 곳."

완벽한 사회복지 제도, 전 국민의 대부분이 중산층인 나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성공적으로 제거된 이 도시에서 베테랑 기자이며 행복한 아내이자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인 한 여자가 '존재의 무가치함'에 대해 토로한다. 새로운 모든 것이 단숨에 습관이 되어 버리고, 죽는 날까지 반복될 일상에 인생 최고의 시절을 낭비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느낌에 빠지는 것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서 최소한의 위안을 구하고자 하는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이 항상 몇 군데 똑같은 식당에만 간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 부분에서조차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자신을 참을 수가 없다.


	스위스 제네바
알랭 드 보통은 스위스에 대해 “점심으로 보도블록을 깨서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파울루 코엘류는 스위스 제네바를 배경으로 소설 ‘불륜’을 쓴다. 결말은 파멸이 아닌 구원으로 향한다. /TOPIC 알랭 드
"'이젠 지긋지긋해.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혼을 한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지역으로 가 세상을 구하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나의 유일한 반응일 테고, 그러다가 암에 걸려 내 속을 야금야금 먹히리라는 것을. 실제로 나는 많은 질병의 원인이 억눌린 감정이라고 믿는다."

혼란스러운 나날 중,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의 남자 친구를 인터뷰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야코프. 이제는 재선을 노리는 유명 정치가가 되었다. 그와 재회한 순간, 열여섯 소녀로 퇴행한 그녀는 취재가 끝난 후 충동적 행동을 저지른다. "내게 사적인 삶은 없어. 내 말은 뭐든 탐색과 질문과 보도의 대상이 돼"라고 말하는 남자와 치명적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더 고통받는 여자가 된다. 그러니까 어느 날, 엄마가 이상해 보인다고 말하는 아이에겐 독백하듯 이렇게 속삭일 수밖에 없다.

"그래, 오늘 엄마가 해선 안 되는 일을 했어. 죄책감은 전혀 안 드는데 들킬까 봐 겁이 좀 나네."

누가 봐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여자에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린다는 남자와 여자의 불륜이 어떻게 다른지 사회적 통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명민한 여자인데도 말이다.

"남자들이 외도를 하는 것은 그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특성이다. 여자의 경우는 자존감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게다가 여자는 자신의 몸뿐 아니라 결국은 마음 한구석까지 내주고 만다. 진정한 범죄다. 절도다. 은행을 터는 것보다 나쁜 짓이다. 언젠가 발각되는 날 (그리고 항상 발각되게 마련이다.) 자기 가족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되니까."

남자에게 생물학적으로 멍청한 실수일 수도 있는 불륜이, 여자에겐 어째서 모든 사람을 향해 저지르는 정신적 살인이 될 수 있는지를 그녀는 냉소적으로 분석해낸다. 불륜의 기원에 대해서 진화심리학은 언제나 그럴듯한 이론을 내놓았다. 상대를 바꿔가며 섹스하고 싶은 욕망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전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유류 중에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는 비율은 3%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오랑우탄과 고릴라는 일부다처제 생활을 한다. 인류학자인 조지 피터 머독의 연구에 따르자면, 일부일처제를 법적으로 채택한 문화는 인류 전체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극단주의자들은 일부일처제가 자연현상을 거스르는 반인간적인 문화적 기준일 뿐이라고도 말한다.


	[Why][그 작품 그 도시] 사랑도 욕망도 한순간… 그래도 나는 그 찰나를 위해 산다

소설 '불륜'의 가장 독창적인 점은 아무래도 그녀에게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불륜에 빠지는 여자들의 남자는 대개 폭력적이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드라마 '밀회' 속 김희애의 남편은 아내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였다. 하지만 린다의 남편은 정반대 남자다. 그는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남자이며, 성공한 사업가이고, 가정적이다. 심지어 그는 아내의 불륜 행각을 알고 나서도 그 일을 캐묻지 않을 정도의 현명함을 겸비하고 있다. 그는 결혼 생활 10년을 넘기는 사람들에게 '혼외정사의 시기'가 찾아온다는 걸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린다가 정부인 야코프의 아내를 질투해 '마약'까지 사서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모략을 꾸밀 때, 나는 욕망에 빠진 여자가 구입한 마약이 어떻게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는지 보고 싶었다. 소설의 배경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제네바라면 그 파괴의 풍경이 조금쯤 더 기괴할 것이고, 작품 속에 총이 등장한다면 그 총은 반드시 발사되어 누군가의 심장을 관통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륜'의 결말은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를 파멸시키지 않고 서로를 구원한다는 아름다운 것으로 끝난다.

"십년간의 결혼 생활에서 나는 한 여자로서 거의 모든 기쁨을 맛보았으며 부당한 일들도 감내해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을 미약하게나마 모방할 수 있었던 순간은 아주 적었을뿐더러 매우 짧았다. 일테면,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알프스를, 또는 레만 호수의 거대한 분수를 바라보던 때. 하지만 그런 얼마 안 되는 순간들이 나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그런 순간들은 내게 삶을 지속할 힘을 주고 살아가는 나날에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삶에 아무리 슬픔을 끌어들이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바라보고, 사랑과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모방하는 것뿐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강렬한 욕망마저 다 지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지금 이 순간뿐이다. 마치 종교 서적의 마지막 장을 읽는 기분이었다. 맥이 빠졌다. 그러나 나는 이 구원의 메시지를 간절히 믿고 싶어졌다. 결혼이 이 모든 것을 알고도 미리 패배하는 것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불륜―브라질 출신의 작가 파울루 코엘류의 장편소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