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14 09:12
“푸핫! 골 때리네. 누가 그린 그림이야?”
발랄하고 발칙한 20대 동양화가,
김현정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식의 말을 내뱉는다.
- 순정녀.
내숭을 그리는 여자
곱게 단장한 한복을 입은 여인이 씩씩하게 역기를 들고 있는가 하면 당구대 위에 철퍼덕 퍼져 앉아 허연 허벅지를 드러내고 능청스럽게 게임을 즐기고 있다. 된장녀를 연상시키는 명품 쇼핑백을 양손에 든 여인도,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도 있다. 단아하고 음전함과는 거리가 먼 발칙하고 파격적인 모습. 김현정 작가는 내숭이라는 주제로 한복을 입은 여성을 그려서 화제가 되고 있는 20대 젊은 동양화가다.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한국화의 아이돌’이라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도 끌고 있다.
‘내숭’이라는 주제가 재미있어요. 내숭 시리즈가 본인의 자화상이라는 고백을 했던데요. 지금 제 모습은 많이 밝지만, 우울증으로 대인 기피가 심했던 때가 있었어요. 사람으로 상처를 받았던 시기인데, 사람들이 앞과 뒤가 다른 모습이 상처가 됐어요. 혼자 고민하면서 생각이 쌓이니 어떤 누구를 만나도 뒤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두렵더라고요. 처음에는 미워하는 사람을 그렸어요. “너네들 앞과 뒤가 다르잖아!”라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제가 모델이 되어서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어느 날 새벽에 거울을 보는데, 거울 속에 그림이랑 똑같은 아이가 있는 거예요. 그 순간 깨달았어요. “나를 닮았구나. 너도 앞뒤가 똑같지 않은 사람이잖아.”
작업 과정을 소개해주신다면요? 누드를 그리고, 그 위에 옷을 입혀요. 그래서 결과물(한복)이 비치는 것으로 나타나요. 기법상 투명하게 그릴 수는 있지만, 한복의 서걱거리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한지를 콜라주해서 작업하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이걸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사진 촬영을 해요. 모델이 항상 동행할 수 없으니까 모델은 제가.(웃음) 쫄쫄이 바지를 입고 한 번, 한복을 입고 한 번 찍어서 두 개의 컷을 크로스해요. 제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작업 과정이에요.
‘수고했어, 오늘도’, ‘아차’ 등 작명센스도 눈에 띄어요. 저는 제목을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제 작품이 키보다 큰 작품이라 완성하는 기간이 길어요. 그 기간 동안 제목을 10~15개 정도 정하고, 그중 제일 어울리는 것을 찾아요. ‘수고했어, 오늘도’, ‘내가 제일 잘나가’처럼 노래 제목도 있어요. ‘아차(我差, Oops)’는 애착을 가지고 있는 제목이에요. 인물의 실수를 부각시켜 나 아(我)에 모자랄 차(差)를 붙여 빈틈이 있는 인물의 상태를 은유하고, 동시에 여인이 내지를 수 있는 ‘아차!’라는 의성어도 되거든요. 이건 제 작업에서 지향하는 유희의 요소이기도 해요. 스스로의 부족함을 뜻하기도 하면서 정말 ‘아차’ 싶은 순간을 그렸어요.
선화예고, 서울대 출신의 엄친딸로도 화제예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어려서부터 작가를 꿈꿔왔어요. 부모님이 미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관심이 많아서 어렸을 때도 미술관에 데려가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언니가 자연스럽게 미술을 하게 되고, 여동생들은 늘 언니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저도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하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3시간씩 그림을 그렸어요.
SNS 스타이기도 하시죠. 처음에는 소소하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하나의 중요한 업무가 되었어요. 궁금한 것을 해소해주는 공간이기도 하고,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힐링을 하기도 해요. SNS의 친구들도 모두 친구예요.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이 있으시고, 매일매일 소통하니까 진짜 친구 같아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어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작가는 보통 사람들의 표현 욕구를 대변해주는 사람이라는 건데요. 작가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보통 사람이 어슴푸레하게 혹은 두루뭉술하게 느끼고 있는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거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슈지만 딱히 마땅한 표현 방법을 찾지 못하던 것을 분명하게 표현해주는 전문인이라는 거예요.
앞으로 작품 활동이나 전시 계획은요?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당연한 걸 물어봐요. “다음에 뭐 그릴 거예요?”(웃음)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다음을 어떻게 알겠어요. 억지로 전시를 잡거나 생각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어요. 만약에 그랬다면 맥딜리버리를 그린 다음 피자헛을 그리고 짜장면 배달하는 모습을 그렸겠죠. ‘머리를 짜지 말고 그리자’가 제 생각이에요. 무계획이 계획이에요. 최근에는 에세이를 하나 냈어요. <김현정의 내숭>(조선앤북)이라고 제 작업노트를 글로 담았는데, 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드리는 기분으로 만들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을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김현정 작가는… 동양화가.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선화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개인전 3회를 포함하여
다수의 전시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대중과 대화하는 신세대 작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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