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8.28 03:01 | 수정 : 2014.08.28 12:18
[전문가들 "친일파가 만든 영웅 주장도 사실과 달라"]
-17세 유관순 고문받다 獄死
日帝, 중대 저항자로 간주… 재판소 판결문에 1번으로 언급
손병희보다 높은 5년刑 받아
-친일파가 만든 인물 아니다
1947년 기념사업회 발족때 김구·이시영·김규식 등 참여
현행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4종(미래엔·천재교육·금성·두산동아)에서 3·1 운동을 서술하면서 유관순(柳寬順·1902~1920)의 이름을 뺀 이유로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기 때문"이라고 한 일부 주장에 대해 전공 연구자들은 "유관순의 항일 행적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를 폄훼하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26일 교육부가 개최한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의 개선안 토론회'에서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있기에 기술하지 않은 것"이라며 "친일 전력의 신봉조·박인덕이 해방 후 유관순을 발굴해 이화 출신의 영웅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관순, 만들어진 영웅?
김 교수가 언급한 연구 성과란 2009년 정상우 서울대 국사학과 시간강사가 계간지 '역사와 현실'에 실은 논문 '3·1 운동의 표상 유관순의 발굴'이라는 논문을 말한다. 한 시간강사의 논문을 역사학계 전체가 수용하는 성과로 이야기한 것이다. 독립운동사 관련 전공자들은 대부분 논문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정상우씨는 논문에서 "유관순이 부각된 것은 해방 직후 이른바 '우파'로 지칭되는 세력에 의한 것"이라며 "이는 자신들의 과거 '친일'이라는 과오를 정화하는 동시에 정치적·도덕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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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아래)고교 한국사 교과서(지학사)에 등장하는 유관순.
◇유관순 행적, 과장됐다?
3·1 운동 전공 역사학자인 이정은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은 "3·1 운동은 전 국민이 참여했지만 17세 소녀가 감옥에 갇혀서도 일관되게 독립을 주장하고 일제의 고문을 받아 죽은 사실은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일제의 경성재판소 복심(2심) 판결문에는 유관순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 이 회장은 "재판소 판결문에 1번이 유관순, 이어서 유관순의 삼촌인 유중무, 조병옥의 아버지인 조인원이 나온다"면서 "조인원·유중무보다 나이나 지위가 아래인 유관순이 1번이 된 것은 일제가 유관순을 가장 중대한 저항자로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당시 재판 기록에는 유관순이 총검에 찔리면서도 '비무장 시위에 총기를 쓰지 마라'고 강력히 항의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면서 "유관순은 일제 재판부에 의해 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손병희 선생이 받은 3년형보다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구도 빼야 하나?
친일 전력이 있는 이들이 높이 평가한 인물이기에 교과서에 실릴 수 없다는 주장은 역사를 제대로 보는 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친일파가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유관순을 기릴 필요가 없다는 말은 '1차원적 민족지상주의'"라면서 "친일 행적이 있는 이광수가 '백범 일지'를 썼다고 해서 김구 선생을 교과서에서 빼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유관순이라는 역사 인물이 항일을 했느냐는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친일파가 높였기 때문에 안 된다는 주장은 옳지 못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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