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06] 메트로폴리탄의 용머리 장식

yellowday 2011. 4. 21. 09:40

외국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한국 유물을 보면 어떤 것은 이국땅에서 우리 문화를 대변하고 있어 대견해 보이고, 어떤 것은 마치 국제대회에 동네 축구팀이 출전한 것 같아 민망스러워진다. 그 중엔 해외에 있는 것보다 국내에 있어야 더 가치를 발할 수 있는 유물도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금동으로 제작된 용머리 토수(吐首)와 풍경(風磬)(사진)은 대단히 희귀한 유물이다. 토수는 목조건축에서 추녀 끝에 끼우는 장식이다. 국내에는 리움에 한 점(보물 781호) 소장된 것이 알려져 있을 뿐이며 풍경과 세트를 이룬 것은 이것이 유일한 예이다.

용이란 사슴뿔, 뱀의 몸체, 잉어의 비늘, 돼지 코, 소의 귀, 호랑이 이빨, 독수리 발톱, 말갈기 등으로 합성된 상상의 동물이다. 그래서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는 큼직하고, 긴 입에 이빨이 드러나고, 머리엔 멋진 뿔이 장식되어 있다. 특히 이 용머리는 바짝 세운 눈썹과 입가에 날카로운 아가미가 달려 있어 더욱 신령스럽다.

몸통 속은 비어 있어 추녀에 끼울 수 있고, 아래턱에 고리가 있어 여기에 풍경을 달게 되어 있다. 풍경은 범종의 형태로 연꽃 당좌(撞座)에 만(卍) 자가 새겨져 있고 종유(鐘乳)도 표현되어 있다. 입술은 네 개의 괄호가 연이어진 모양으로 예쁜 곡선을 그린다. 조각 형식으로 보아 고려초, 10세기 유물로 추정된다. 모든 예술 작품은 마무리 처리에서 승패가 결정된다. 탑의 상륜부와 건물 용마루 끝의 치미(��尾)를 황금으로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토수와 풍경을 추녀 끝에 단 건물은 대단히 화려하고 장엄했을 것이다. 필시 고려 궁궐의 어느 전각에 달렸던 것이라 추정되니 모르긴 몰라도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된 것이리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데이터베이스에는 1999년의 구입품으로 적혀 있다. 너나없이 해외문화재 환수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이런 희귀한 유물을 놓쳤다니 아쉽기 그지없다.       [유홍준의 국보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