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연륜이 빚어냈다, 짧은 詩의 깊은 맛

yellowday 2014. 4. 28. 15:03

 

입력 : 2014.04.28 03:02

['짧은 서정시' 담은 책 출간 잇달아]

강은교·이시영… 60대 이상 시인
주로 감각적 이미지·반복법 사용… 산문화된 후배들 시 비판 의도도

짧은 서정시가 시단(詩壇)의 새 흐름으로 등장했다.

시창작(詩創作) 40년이 넘은 중진 시인들이 잇달아 단형시(短型詩)로 신작 시집을 꾸미고 있다. 이미 최동호·조정권·이하석 등 환갑을 넘긴 시인들이 '극(極)서정시(극도로 압축된 서정시)'를 표방하는 시집을 각각 내놓은 바 있다.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가 산문화(散文化)하는 것에 대한 선배 시인들의 비판이기도 하다.

강은교(69) 시인은 최근에 낸 시집 '바리연가집'(실천문학)에 2행이나 3연짜리 시를 여럿 실었다. 바리데기 무가(巫歌)를 연상케 하는 긴 시행의 시가 시집의 주류를 이루지만, 그 사이 사이에 단가(短歌)를 집어넣어 책의 호흡을 다듬었다. 2행 시로는

 

"검붉은 닻이 갑판에 쓰러져 누워 내게 말했네/

 진흙에 안겨 몸부림 쳤으나 그의 심장소리 참 아름다웠다,

 

고"라는 시 '닻'이 눈길을 끈다. 닻과 진흙은 깊은 사랑을 나눈 사이를 비유한다. 닻이 진흙에 파고들고, 진흙이 닻에 뒤엉키듯이 사랑했단다. 물 밖으로 올라온 닻은 비록 그 사랑이 고결한 것만은 아니었고 사실 진흙탕 싸움처럼 힘들었다고 해도 옛 사랑의 아름다운 심장 소리를 추억한다.


	닻-강은교
강은교 시인은 스마트폰에 코를 처박는 세태를 한 줄로 풍자한 시 '스마트폰'도 썼다. "거기 그렇게 많은 이마들이 구원에 경배하고 있었다니"라는 시다. 시인은 3연짜리 시 '등대의 노래'로 서정시의 압축미를 보여주기도 했다. "너의 눈이 천 리를 안을 수 있다면// 너의 눈이 천 리를 안아/ 내 언저리에 둘러 앉힐 수 있다면// 나, 가리/ 천 리 함께 가리." 먼 곳을 바라보는 듯 서 있는 등대 너머 수평선을 지나 하늘길까지 가고 싶다는 시인의 바람을 군더더기 없이 노래했다. 짧은 서정시는 감각적 이미지와 반복법에 자주 의존한다. "저 불빛들을 어쩔 것인가/ 온몸이 눈이 되어 빛을 핥고 있는 저 불빛// 보고지고 보고지고// 꽃술 뛰어내림 보고지고"(시 '꽃술' 전문).

시인 이시영(65)은 10년 넘게 짧은 서정시의 미학을 독보적으로 다듬어왔다. 그는 새 시집 '호야네 말'(창비)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노래를 짧게 불렀다.

 

"달빛이 달빛을 쪼느라고/

밤의 부리가 샛노랗다"

 

(시 '새' 전문). 누런 달이 뜬 밤하늘을 읊은 시다. 시의 길이는 짧지만 공간은 넓다. 누런 달을 새의 노란 부리라고 했으니, 그 밤하늘은 전설의 새 대붕(大鵬)처럼 크게 날개를 편다. 교교(皎皎)한 달빛 아래 나무에 앉은 새가 부리로 쪼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한 밤이기도 하다.


	호랑나비-이시영
이런 짧은 서정시는 속으로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얼핏 내비친다.

 

"파도가 파도를 건너느라/

이 밤이 시리다"

 

(시 '보름' 전문). 자꾸 읽다 보면 파도의 반복되는 일렁임이 떠오르고, 어둠 속에서 더 희게 빛나는 파도 거품이 시린 이빨처럼 느껴진다. 차가운 밤바다에 깊이 잠긴 어떤 사연을 상상케 한다.

 

 "검은점호랑나비 한마리가 산나리꽃 위에 앉아/

자울자울 조을고 계시다/

자세히 보니 바람에 날개가 많이 찢기었다"

 

(시 '호랑나비' 전문). 이 시에서 연약한 나비는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낸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이기도 하다.

요즘 시단에선 고희(古稀) 안팎이 돼도 젊은 시인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시인들일수록 일상을 짧게 노래한 시를 많이 쓴다. 이런 추세라면 곰삭은 언어로 오랜 연륜을 응축한 단시(短詩) 창작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