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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봉사하며 산 이유 ‘나치 출신 아버지’ - ‘서프라이즈’

yellowday 2014. 4. 13. 16:02

 

입력 : 2014.04.13 11:11


	‘서프라이즈’ 오드리 헵번, 봉사하며 산 이유 ‘나치 출신 아버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평생을 봉사하며 살았던 이유가 나치 출신 아버지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했다.

13일 오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오드리 헵번의 생전 이야기가 공개됐다.

헵번은 1950년대 한 편의 영화를 캐스팅 받은 후로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영화는 ‘안네의 일기’였다. 이 영화는 1958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한 영화로,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헵번이 캐스팅을 받은 역할은 모든 여배우들이 원하던 역이었다.

헵번이 이 역을 거절한 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악몽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자란 헵번은 당시 나치 독일 세력의 확장과 함께 자신의 가정이 산산조각이 나는 아픔을 겪었다. 헵번의 아버지 안소니 헵번은 나치에 적극 동조, 가족으로서의 입장보다 나치의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집을 나갔다. 헵번이 6살일 때의 일이었다.

당시 헵번은 나치세력에 의해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아버지가 이 끔찍한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와의 소식은 완전히 끊어졌고 헵번은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헵번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나치 출신인 아버지가 헵번의 인기에 악영향을 줄 것을 걱정한 어머니가 편지를 모두 숨기고 있었던 것. 아버지는 자신이 헵번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숨긴 채 영국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안네의 일기’ 역을 고사한 헵번은 1960년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헵번은 그의 죄를 대신해 남은 여생을 구호운동을 위해 봉사했다. 헵번은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날 사망했던 헵번은 언론에서 클린턴보다 더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sara326@osen.co.kr

<사진> ‘신비한TV 서프라이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