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09 03:02
極서정시 시집 낸 시인 최동호
- “시는 노랫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최동호 시인. /박해현 기자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세상이다. 시(詩)도 거기에 적응해 짧아져야 생명력을 얻는다."
최동호 시인(66)이 '극(極)서정시' 운동을 표방한 시집 '수원 남문 언덕'(서정시학)을 펴냈다. 극서정시는 '극도(極度)로 축약된 단형시(短型詩)'를 뜻한다. 고려대 국문과 명예교수이자 비평가로도 활동하는 최 시인이 2011년부터 시단(詩壇)에 제안한 신조어다. 그의 극서정시는 4행을 기본으로 삼는다. '창 밖에 걸어놓은/ 등불 하나/ 고독한 섬이/ 바람의 둥지를 흔든다'는 시 '등대'가 대표적이다. 극단적으론 1행짜리도 몇 편 있다.
최 시인은 "요즘 우리 시가 길고 장황하고 난삽해진 현상을 반성하기 위해 극서정시의 개념을 제시했다"며 "시는 컴퓨터 칩처럼 고도로 집약된 정보를 담으면서 시 본연의 노래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극서정시론(論)을 지지하는 60대 이상 중진 시인들이 짧은 시로 시집을 묶는 게 요즘 문단의 새 흐름이기도 하다. 최 시인은 아마추어 시인들이 SNS에 올리는 짧은 시 유행과는 거리를 둔다. "SNS 시는 너무 얇고 가볍다. 극서정시는 시인들이 전통 시학(詩學)을 유지하면서 휴대폰 화면에 들어갈 수 있는 120자 이내의 시를 쓰자는 것이다." 최 시인은 "짧지만 극적(劇的) 전환이 있어야 한다"며 자작시 '화령전'을 암송했다. 정조(正祖) 초상을 모신 수원의 화령전(華寧殿)을 소재로 한 4행시다. '첫사랑의 입맞춤 남몰래/ 화령전 붉은 기둥에 새겨 놓고/ 나비 날아간 그 꽃밭 사잇길/ 누가 볼세라 잠 못 든 어린 날.' 첫 번째와 두 번째 행은 첫사랑의 공간(화령전)을, 네 번째 행은 첫사랑의 시간(어린 날)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세 번째 행은 첫사랑의 아련한 이미지를 묘사할 뿐이다. 그 행의 '꽃밭 사잇길'은 기억 내용이면서 동시에 시인을 첫사랑의 추억으로 이끄는 오늘의 '꿈길'이기도 하다.
최 시인은 "우리 시조(時調)와 일본 하이쿠가 아닌 제3의 길을 찾으려다 보니 향가(鄕歌)의 정신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했다. 현대시에 이미 선례(先例)가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의 '그 꽃')이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의 '섬')를 꼽는다. 최 시인은 "우리 시인들이 가수 김광석 같은 음유 시인이 돼야 시가 살아남는다. 앞으로 SNS에도 시를 올리겠다"고 밝혔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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