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yellowday 2014. 2. 1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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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 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젠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궈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리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께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오랑캐꽃, 아문각, 1947>

 

 

이해와 감상

 

북간도의 술집에서 남쪽의 여자와 북쪽의 남자가 만났다. 시의 화자는 추위에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인데, 그가 애틋한 사랑의 마음으로 보는 여자는 `눈이 바다처럼 푸르'고

`까무스레한 얼굴'의, 술 따르는 주막 여인 `전라도 가시내'이다. 시절은 흉흉하여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데, 둘은 술상을 놓고 앉아 객수를 달래고 있다. 

제 3연까지는 위와 같은 대체적 정황이 제시되고, 제 4연 이후는 같은 처지의 고국 여인에 대한

화자의 절절한 연민과 사랑이 표현되어 있다. 봄을 불러줄 테니,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는 화자의 말에는

애틋한 사랑이 잘 녹아 있고,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라는 구절에는 단신으로 압록강을 건너

온 여인의 강인한 품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노래도 없이' `자욱도 없이' 사라지리라고 한다.

과시(誇示)도 과장도 없이 낯선 이국 땅의 객소에서 만난 두 사람의 동족애와 사랑은 험한 시절을

살아야 했던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우리 앞에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이용악의 시적 언술 방법은 식민지 시대 우리 시의 한 성취를 보여준다. 그의 시는 손쉽지 않는

사실주의의 시적 수용을 독특한 방식으로 시험했고 그 성공적인 궤적은 우리 현대시의 한 흐름을 이루었다. [해설: 이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