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08 03:02
한때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필자의 글 '사람과 소나무'를 줄이고, 좀 고쳐 옮겨 놨다.
소나무를 잎의 개수로도 분류하니, 2개씩 무더기로 뭉쳐난 것은 소나무·반송·해송 등이고, 3개씩인 것은 리기다소나무·백송 등이며, 5개씩인 것은 잣나무·섬잣나무 등이다. 그런데 소나무도 단풍이 들까? 늦가을 소나무 수풀에 마침내 진초록을 잃고 누렇게 조락한 송엽이 한가득 달렸다. 활엽수는 봄에 난 잎을 가을에 죄 떨어뜨려 벌거숭이가 되지만 청솔은 올 것은 그대로 있고 지난해 것 일부와 지지난해 것이 떨어진다. 그리고 뭉쳐난 솔잎 표면적을 일일이 계산하면 활엽수의 증발 면적을 앞지르니, 여우비 오는 날 소낙비 가림막으로 소나무 밑이 참나무보다 한결 유리하다.
솔잎을 바닥에 깔고 추석 송편을 찌는 것은 결코 솔향기를 맡자는 것이 아니라, 솔잎에 든 피토알렉신(phytoalexin)이란 항균물질로 송편이 상하는 것을 막자는 데 있다. 송편에 소담한 과학이 담겼구나! 그리고 "거목 밑에 잔솔(애송) 못 자란다"고 하는데, 이는 솔숲이 가는 빛발이 겨우 새어들 정도로 짙은 그늘을 지워 솔씨의 싹틈을 방해할뿐더러 뿌리에서 딴 식물의 생장을 억제, 저해하는 갈로타닌(gallotannin)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 탓이다.
솔은 암수한그루에 암·수꽃이 따로 피는 양성화다. 올봄에도 가지 끝자락에 젖꼭지만 한 적자색 암꽃 2개가 봉곳이 달릴 것이며, 바로 아래 수꽃들이 송홧가루를 만든다. 높직이 자리한 올해 암꽃의 아랫마디에 있는 짙푸른 풋것은 전해 것이고, 그 밑 마디의 메마른 송실이 이태 전 것이다. 저런, 소나무 한 나뭇가지에 삼자매가 쪼르르 한 해 터울로 달렸구나!
"못된 소나무에 열매만 많다"고, 꼬락서니가 이웃 나무들과 달리 너저분하고 추레하면서 솔방울만 주체할 수 없이 잔뜩 매달고 있다면? '골골 팔십이라' 했던가. 아무튼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마감해야 하는 터라 엄청난 송과를 둘러멘 것으로, 이는 노송의 절절한 종족 번식의 비원(悲願)이렷다.
자연은 말을 걸어오는 이에게만 눈길을 준다. 솔방울의 잔비늘 조각을 낱낱이 헤아렸더니 한 송이에 자그마치 평균 100여개나 되더라. 인편은 축축하면 꼭 닫히고 마르면 쩍 버니 이를 '솔방울 효과'라 한다. 그리하여 물에 담근 솔방울 한 소쿠리를 방구석에 놓아두면 머금었던 물기를 뿜어내니 가습기가 된다.
오늘 따라 소나무 가지에 스치는 솔바람 소리가 유달리 융융거린다. 세한송백(歲寒松柏)이라, 어떤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절개와 지조를 지킨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여, 영세(永世)하시라!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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