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집 맛난 얘기]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해물부추수제비>
‘음식디미방’을 비롯한 옛 조리서에 보면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 가짓수가 의외로 많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밀 농사가 그다지 잘 되지 않는다. 밀 생산량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반가 음식에 밀가루 소재 음식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밀가루는 음식 속에 들어가면 잡내를 제거하고 맛을 부드럽게 해준다. 반가 음식들은 대개 손님 접대용이었다. 밀이라는 희소성 높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은 집주인의 사회 경제적 위상을 과시하는 측면이 있다. 동시에 손님에게 ‘이렇게 귀한 음식을 대접받았다’는 만족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밀은 적은데 밀가루 음식의 가짓수는 많았기 때문에 음식에 실제 들어가는 밀가루의 양은 많지 않았다. 어떤 음식에는 그저 넣는 시늉만 하기도 했다.
홍합 등 다양한 해산물 푸짐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밀가루는 그만큼 귀한 식재료였다. 경기도 일산의 <해물부추수제비>를 대하니 잠시 밀가루 귀했던 옛 생각이 나 행복감에 젖었다. 이 집은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집이다. 집기나 식탁이 깨끗하고 실내가 쾌적하다. 그러나 주인장은 신출내기가 아니었다. 본래 음식점을 수 십 년 운영했던 베테랑이다. 잠시 손을 놓았는데 다시 식당을 재개한 것이다.
- 해물부추칼제비
우선 ‘해물’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여러 가지 해산물이 들어갔다. 가리비, 홍합, 바지락, 주꾸미, 새우, 오징어, 갑오징어, 호래기를 넣었다. 물론 홍합과 바지락만 빼면 다른 해산물들은 양으로 따져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양한 해산물이 입에 씹힐 때마다 먹는 즐거움을 준다.
칼제비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제 몫을 내는 부분이 또 있었다. 국물이다. 다시마, 무, 양파, 바지락 등 10여 가지 재료로 국물을 냈다. 개운하고 시원한 국물 맛의 비결은 한번 우르르 끓으면 바로 불을 끄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끓인 국물은 맛이 깊고 풍부하다. 해물이나 해물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맛나게 먹을 듯하다.
- 얼큰해물부추칼제비
부추로 반죽하고 억지 매운맛 내지 않아
칼국수 면발과 수제비를 자세히 보면 파릇파릇한 부추가 보인다. 최근 건강 식재료로 각광받는 부추를 반죽하면서 잘게 썰어 넣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식감과 시각적 효과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썬 부추와 함께 한 번 반죽한 반대기는 하루 정도 숙성을 시켜서 쓴다. 그러나 면발은 생각만큼 그렇게 쫄깃하지는 않다. 유난히 쫄깃함 좋아하는 사람에겐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수제비나 칼국수에게 요구되는 수준으로는 충분하다.
국물이 개운하기 때문에 해장용으로 먹어도 좋다. 특히 얼큰 해물부추칼제비는 매운 맛을 가미, 해장용으로 알맞다. 캡사이신을 자제하고 청양고추로 매운 맛을 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매운 맛이 크게 자극적이지 않고 뱃속에서도 심하게 불편하지 않다. 다만 국물이 탁한 편이어서 맑은 국물을 선호하는 사람에겐 텁텁하게 느껴질 수 있다.
- 만두랑 김치
오후 3시까지 낯 시간에는 술을 팔지 않으며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예전 사대부가에서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했을 밀가루 음식. 한 그릇의 칼제비에 무한 행복을 느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안다. 칼제비의 포만감이 행복감으로 치환되었던 어느 날의 기억도.
<해물부추수제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864-1 031-903-7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