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나비부인'이 여러 차례 다양한 버전으로 공연이 되었다. 그럼에도 감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가 클래식 모임에서 보게 되었다. 스크린이 영화관만큼 크진 않지만 그런대로 좋았다. 나비부인은 미국의 "존 루터 롱"의 소설로 논픽션에 바탕을 둔 내용이다. 처음엔 희곡으로 공연되었는데 런던에서 공연을 본 푸치니가 감명을 받아 오페라로 작곡한 것이다. 그러나 첫 공연은 실패로 끝나고 다시 대본과 연출의 수정작업을 거쳐 제개된 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라보엠'과 '토스카'와 더불어 푸치니의 3대 오페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제1막에서는 해군 중위 핑커톤이 일본 여자 게이샤인 나비부인과 만나 결혼을 한다. 핑커톤은 진정한 결혼은 미국 여자와 할 속마음을 숨긴 채 나비부인과 결혼을 한다. 사랑에 빠지면 거짓과 진실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눈을 잃고 만다. 비극은 거기서 시작이다. 나비부인 역의 'Yasuko Hayashi' 소프라노 목소리는 좋은데 15세의 게이샤역과는 거리가 느껴졌다. 나이가 훨씬 더 들어 보여 인물 설정에선 실패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불교도인 나비부인이 핑커톤을 만나고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승려인 백부가 나타나 그녀의 개종과 친척들까지 버린 것을 꾸짖는다. 핑커톤이 나비부인을 위로하며 2중창을 부른다. " 나비부인, 아름다운 그 눈, 이제는 나의 것, 흰옷에 갈색머리 아름다운 그 깨끗함." "아, 즐거운 밤이여"를 노래한 후 방으로 들어간다. 본마음을 숨기고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남자의 속성인가? 결혼식에 들려주는 "아, 아름다운 하늘이여, 바다도 빛난다". 등 아름다운 축복의 노래가 나비부인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으련만.
제2막 1장에서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시점이다. 결혼 후 떠난 핑커톤을 나비부인은 항구를 지나는 배의 깃발을 모두 살피며 오매불망 기다리며 일본의 신은 게을러서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나비부인의 하녀인 스즈키는 핑커톤이 돌아오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지만 나비부인은 "울새가 둥지를 틀 때 돌아오겠다"는 핑커톤의 말을 떠올리며 위안으로 삼는다. 핑커톤의 이 대사는 문득 영화 "다리"의 "흰 나방이 날개 짓 할때" 라는 예이츠의 싯구와 겹쳐진다. 이때 흘러나오는 애절한 아리아 " 어떤 개인 날(Un bel dì, vedremo)"의 가사다.
어느 맑게 개인날
저 푸른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한 줄기 연기를 바라보게 될 거야
하얀 배 한 척이 항구로 들오아 예포를 울리겠지
봐, 그이가 온 거야
그러나 난 그곳에 가지 않아
난 작은 동산에 올라가서
그이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이와 만날 때까지
복잡한 시가지를 한참 지나 한 남자가 오는 것을 멀리서 바라볼 거야
그가 산 언덕에 위에 오면 무어라 말할까?
멀리서 " 버터 플라이" 하고 부르겠지
난 대답하지 않고 숨어 버릴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나 큰 기쁨에 겨워 내가 죽을지도 몰라
한참 동안을 그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내 어린 아내여, 오렌지꽃이라고 늘 부르던 그 이름을 부르리라
이렇게 되는 날이 꼭 올 거야
그이의 믿음을 간직하며, 난 그이가 돌아오길 믿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이다. 그 때 고로와 샤플레스 영사가 왔다. 나비부인은 기뻐하지만, 샤플레스는 핑커톤이 미국에서 정식으로 다른 여자와 결혼했으니 단념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해주러 온 것이다. 중매쟁이 고로는 끊임없이 구애를 해오는 돈 많은 야마도리 공작에게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나비부인은 단호히 거절한다. 샤플레스는 나비부인에게 핑커톤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그녀는 슬픈 얼굴로 다시 게이샤가 되던지 죽든지 할 거라고 한다. 샤플레스도 야마도리 공작을 청혼을 받아드리면 좋겠다며 위로를 해보지만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 주세요." 하면서 아기를 안고 나와 " 푸른 눈의 아기가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샤플레스가 아이의 이름을 묻자"지금은 괴로움이지만 그이가 돌아오면 기쁨" 이라는 은유로 답한다. 이때 항구에서는 대포소리가 나며 군함의 입항을 알린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나비부인은 미국 국기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스즈키와 정원에 나가 벚꽃을 따서 방에 뿌리며 "꽃의 이중창"을 부른다. 나비부인은 화장을 하고 결혼식날 입었던 의상으로 창문에 서서 핑커톤을 기다린다. 멀리 항구에서 뱃사공들의 노래가 허밍으로 들려온다. 핑커톤을 기다리는 나비부인의 마음이 꽤 오랫동안 그림자극으로 연출되며 묵언이 풀어내는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2막 2장은 막이 열리니 새벽이다. 지난 밤 잠을 이루지 못한 나바부인이 의연히 항구 쪽을 바라본다가 아이를 안고 2층으로 올라간다. 이때 핑커톤과 샤플레스가 나타난다. 스즈키는 나비부인이 3년동안 한결 같이 기다렸으면 어젯밤엔 방에 꽃을 뿌리고 철야를 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러나 본국에서 데려온 아내를 보고 탄식을 한다. 핑커톤과 샤플레스, 스즈키가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는 삼중창을 부른다. 핑커톤은 '안녕, 행복과 사랑의 보금자리여," 로 시작되는 이별을 고하는 아리아" 잘 있거라 꽃의 보금자리여"를 부른 후 급히 나간다. 핑커톤의 부인이 나타나 "아이를 맡겨주시면 친자식처럼 키우겠다고 한다. 큰 충격에 빠진 나비부인은 30분 후에 다시 오면 아이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창문을 닫고 스즈키를 내보낸다. 아이가 다시 들어와 껴안고 "너냐, 너냐? 작은 수호신이여" 극적인 아리아를 부른다. 배신과 절망은 죽음으로 가는 길목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물인 단도를 꺼내 생을 마감한다.
오매불망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순애보적인 사랑은 그래서 더 슬프다. 설화나 전설, 음악과 문학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읊어 가슴을 아리게 하는 스토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득, 극적인 만남의 '솔베지이지의 노래' 가 떠오른다. 백발이 되도록 페르귄트를 기다리던 솔베이지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는 페르귄트, 페르귄트를 따라 죽음에 이르는 솔베이지, 페르귄트의 눈에 보이는 오두막의 희미한 불빛은 솔베이지의 마음이 가 닿은 착시 현상은 아니었을까. 사랑은 늘 기다림의 역사로부터 시작된다.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사랑은 애달프지 않다. 오직 한 사람을 기다리며 순정을 키워가는 사랑, 그 끝이 비록 죽음일지라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나비부인의 여운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연숙님 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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