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기업·대학가까지 점령한 심리학… 과도한 自己 탐색이 엉뚱한 길로 인도
'나는 정상일까?' 강박에 시달리기도
'백수 5분 대기조'란 말이 있을 만큼 취업이 안 돼 배고픈 학문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심리학이 시대의 '트렌드 세터'로 등극한 건, 금융 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하반기였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필두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사회심리학자 이철우의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등 심리학 책들이 서점가를 점령했다. 대학의 심리학 개론 수업은 자리가 없어 못 들어갈 지경이 됐고, 심리학과 입시 경쟁률도 급등했다. 기업에서도 심리학 특강이 붐을 이뤘다. '힐링' '웰빙' '감성' '행복'이란 수식을 달고 자녀 교육, 마케팅, 재테크, 관광 분야로까지 번져나간 심리학은 상실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만병통치약, 혹은 미다스의 손으로 여겨졌다.
독일 심리학 전문지 편집장인 저자는 이처럼 심리 산업 전성기를 맞고 있는 독일 사회, 아니 전 세계를 향해 '미치기를 권하는 사회'라고 포문을 연다. 종교를 신봉하듯 심리학을 숭배하며 모든 문제를 심리학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나는 정상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트러블마저 병으로 진단하게 하고, 살면서 겪는 불가피한 트러블을 죄다 위기 상황으로 몰면서 우리 일상을 지뢰밭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실제로 심리학의 과잉은 수많은 편견을 발생시켰다. 독신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무능한 것일까,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 부부는 성적 장애에 시달리는 것일까, 아이가 평균 이상으로 활달하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인가, 서른 살이 되도록 부모와 함께 살면 마마보이인가, 하는 삐딱한 시선들 말이다.
저자는 '사기극'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정신질환자가 증가하는 것은, 병을 앓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의사가 정신질환으로 진단하는 횟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심리학이 행복의 처방전을 나눠주고 스스로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만 실은 사기극"이라고 단언한다.
한때 국내에서도 열풍이 불었던 '모차르트 효과', 지금도 진로적성검사나 인성검사에 활용되는 'MBTI' 검사, IQ 테스트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임신 말기나 돼야 바깥의 청각 신호를 겨우 감지하는 태아가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지능이 더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허점과 오류투성이고, MBTI는 아침과 저녁, 하루 중 언제 설문지에 답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성공에 눈먼 심리학자들의 허무맹랑한 실험들도 질타한다. 잘생긴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의 기회를 더 잘 잡고, 육식을 하는 사람이 채식만 하는 사람보다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이 되며, 이름이 직업과 사는 곳을 결정한다는, 다분히 미신적이고 근거 없는 신화들이 학자들의 조작된 연구 결과로 나왔다는 것이다.
-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지능이 좋아진다는‘모차르트 효과’는 심리학이 만들어낸 사기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이 다 옳을 리 없다. 지나친 감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 또한 수많은 '팁'을 던지는 심리학서의 일종 아닌가. 그래도 이 말만큼은 마음에 든다. '자아를 들여다보는 눈은 없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 더 많이 깨달을수록 더 좋다는 잠언은 우리를 더욱 궁지에 빠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