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26 03:04
"라인강의 기적을 한강에 피우려고 떠나던 그날/ 국민소득 72달러의 가난이/ 우리가 받은 유산의 전부였다."
독일 광부 출신 재미(在美) 시인 이성재는 그렇게 읊었다. 50년 전 1963년 12월 21일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던 젊은이들 얘기다.
그들은 석탄 가루로 뒤범벅된 빵을 씹으면서도 조국에 독일 아우토반 같은 고속도로가 놓였다는 소식에 고단함을 잊었다.
라인강변에서 현대 자동차와 삼성 TV를 보면 '아낌없이 바친 젊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가슴 뿌듯해했다.
▶독일에 간호사로 갔다가 화가가 된 노은님은 김치 담그려고 양배추 사는 돈을 빼곤 모두 집에 부쳤다고 했다.
다들 집에 한 푼이라도 더 보내려 안간힘을 썼다. 어떤 이는 제약회사에서 신약이 나오면 약효를 시험하느라 먹어보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힘들고 고향 생각 날 때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하는 이미자 '동백 아가씨'를 부르며 울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 독일에서 광부·간호사로 젊음을 보낸 분이 2만명 가까이 된다. 이들이 덜 먹고 덜 입으며 보낸 외화가 국내 산업을 일으키는
종잣돈이 됐다. 그런데도 파독(派獨) 광부·간호사를 정부 행사에 공식 초청한 것은 지난 2월 대통령 취임식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온 광부·간호사 모임 대표들은 항공료와 숙박비도 모두 본인들이 부담했다.
▶이들은 "정부 의전 차량이 공항에 나와 숙소까지 데려다줘 감격했다"며 "정부의 공식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라고 했다.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의 가치를 정부와 국민이 잊지 않았다"며 좋아했다. 그만큼 파독 광부·간호사들은 고국의 부름에 목말라 있다.
그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 '정수코리아'라는 정체불명 단체가 초청 사기극을 벌였다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단체는 독일·캐나다·미국에 사는 파독 근로자 220여명에게 '파독 50주년 기념 모국 방문'을 시켜준다며 불러들였다.
항공료와 가이드비까지 받고는 약속한 일정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정부가 나서 남은 일정을 모시기로 했다.
파독 근로자 중엔 형편이 어려워 50년 가까이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한 분이 적지 않다. 정작 돌아와봐도 며칠 묵을 곳조차 마땅찮은 경우도 많다.
수많은 개인과 단체가 산업화·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훈·포장을 받았지만 파독 근로자한테는 남의 집 얘기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이분들을 제대로 예우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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