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추분(秋分)

yellowday 2013. 9. 24. 14:27

 

입력 : 2013.09.24 03:03

추석 연휴 끝 무렵 한강 선유도공원을 걸었다. 콘크리트 수조만 가득한 폐(廢)정수장을 생명의 숲으로 가꾼 지 11년. 불순물 거르고 가라앉히고 농축하던 수조들은 그 모양 그대로 갖가지 풀과 나무를 키우는 화단이 됐다. 사람들이 숲 그늘 벤치와 평상에서 책을 읽는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잠자리채 들고 나비며 잠자리를 쫓는다. 딱 하나 아쉬운 것이 날씨다. 아침부터 후텁지근하다. 하늘이 연무로 뿌옇다. 낮 기온이 30도까지 치솟았다.

▶그래도 산사나무는 루비처럼 빨간 열매를 맺었다. 산딸나무 열매는 벌써 땅에 떨어져 물러졌다. 꽃보다 상한 열매 좋아하는 청띠신선나비가 올라앉아 게으르게 즐긴다. 날개를 이따금씩 느릿하게 움직여 하얗고 파란 띠를 보여준다. 갈대 비슷한 달뿌리풀도 자줏빛 꽃을 피워 하얗게 팰 차비를 마쳤다. 수조 벽을 덮은 담쟁이도, 성급한 단풍잎도 주홍빛이 돼 간다. 은행잎은 가장자리부터 노랗게 물들고 있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만물상] 추분(秋分)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 지난 지 한 달 됐다. 이슬 내리기 시작하는 백로(白露)는 보름 전이었다. 그리고 어제가 추분(秋分)이었다. 우렛소리 그치고 벌레가 겨울날 곳 찾아 숨는다는 날이다. 그런데도 집 마당 은행나무에선 매미가 울어댄다. 모기가 한여름보다 그악스럽다. 선풍기가 여태껏 거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반팔 옷을 언제까지 입어야 하나 싶다.

▶기상학에선 하루 평균 기온이 아흐레 내리 20도 아래로 내려간 첫날 가을이 시작한다고 친다. 가을은 70년대 9월 18일이던 게 2000년대 9월 25일로 일주일 늦게 왔다. 온난화와 도시화 탓이다. 1910년대 19.7도였던 9월 평균 기온도 2000년대 21.7도까지 올랐다. 100년 사이 2도 오른 것은 엄청 빠른 속도라고 한다. 가을이 더디 와도 짧아진 건 아니다. 70년대 62일이던 가을은 2000년대 66일로 늘어났다. 여름이 긴 대신 겨울이 짧기 때문이다.

▶오늘 내일 비 쏟아지고 나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 서울 최고기온이 21~23도, 최저기온은 11~12도로 내려간다고 한다. '공식 가을'이 26일쯤 시작할 모양이다. 맹렬하던 노염(老炎)도 어느 한순간 게 눈 감추듯 사그라진다. 농부는 가을걷이에 마음이 바쁘다. 벼 조 수수 콩 팥 고추…. 거두고 말릴 게 끝이 없다. 기름 두둑이 오른 방어가 남쪽 바다로 내려온다. 거스를 수 없는 것이 계절이다. 이 비 그치면 이부자리 말리듯 여름내 눅눅하던 몸과 마음을 보송보송하게 말리고 싶다.  오태진 논설의원  조닷

'朝日報 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의 禁煙 파워  (0) 2013.09.26
제일모직  (0) 2013.09.25
명동 중국 대사관  (0) 2013.09.23
나가사키 조선소   (0) 2013.09.22
'헌책방 보물찾기'  (0) 2013.09.18